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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삼 목사

<피스토스 기독대학 학장>

 

예수님께서 제자와 함께 나인성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그때 죽은 자를 메고 나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나인성을 찾아 들어가는 대열이 있고 이 나인성을 등지고 나오는 대열이 있습니다.
첫째로 한 대열은 예수님이 앞서고 한 대열은 시체가 앞에 있습니다.
나인성을 향하여 들어가는 대열은 생명의 주되시는 예수님이 앞서신 대열인데 나인성에서 나오는 대열은 시체를 메고 나오는 대열입니다.
그러니까 한 대열은 생명의 대열이고 한 대열은 사망의 대열인 것입니다. 한 대열은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기쁨으로 걸어 들어가는 대열이었으나 한 대열은 슬픔으로 땅을 치며 나오는 대열이었습니다.
둘째로 한 대열은 전도하러 가는 대열이요 한 대열은 무덤으로 가는 대열입니다. 예수님의 대열은 삶의 기쁜 소식인 복음을 들고 가는 대열인데 반하여 한 대열은 무덤을 향해 시체를 메고 가는 대열입니다.
셋째 한 대열은 기쁨의 대열이요 한 대열은 슬픔의 대열입니다.
예수님이 앞서신 생명의 대열은 기쁨의 대열입니다. 파도가 휘몰아쳐도 주님이 잠잠하라 하시면 잠잠해집니다.
병고에 시달려도 주님이 손만 잡으면 낳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하고 불러 주시는 사랑의 주님이 앞에 계십니다.
이 어찌 이 대열에 속한 사람들이 기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영생의 말씀을 들으며 너희 있을 곳을 예비하러 가셨다가 다시 오시마고 하신 주님의 대열이 얼마나 복됩니까? 그러나 시체가 앞선 대열은 얼마나 슬픈 대열이겠습니까? 청춘과부가 되어 아들 하나만을 의지하고 살고 있었는데 그 아들이 어머니만 홀로 두고 죽었으니 이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그가 의지하던 아들이 그의 소망이요 보람이던 아들이 죽었으니 그는 얼마나 땅을 치고 울고 싶겠습니까?
이렇게 슬피 울며 상여에 매달려 가는 그 여인을 보고 눈시울을 적시지 않는 사람이 그 누구입니까?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절망뿐입니다. 네 번째로 한 대열은 소망의 대열이요 한 대열은 절망의 대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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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게 자라는 나무에서는 가을이 되면 과일을 딸 희망과 기대가 있습니다.
그러나 죽어있는 고목에서는 아무런 것도 딸 희망도 기대도 할 수 없습니다.
생명의 주님이 앞선 대열은 모든 것이 소망이요 희망이 넘칩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머지않아 우리들이 갈 천국이 우리 것이요 주님은 벌써 내가 있을 곳을 예비하셨을 것이며 하나님은 나에게 알맞는 상급을 준비하고 기다리실 뿐 아니라 그 곳은 다시는 눈물이 없고 병도 없고 주림이 없으며 사망도 없으며 고통도 없는 곳이니 생각만 하여도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립니까? 그러나 시체가 앞선 대열은 모든 것이 절망뿐입니다.
어두운 지옥에서 밤낮 뜨거움에 시달려야 하니 죽기를 바라지만 죽을 수도 없고 혀를 깨물어도 고통을 이길 수 없는 곳입니다.
우리가 여름에 조금만 더워도 죽겠다고 하는데 지옥의 불에서 당할 괴로움을 생각할 때 절망뿐임은 당연합니다.
요한 웨슬레는 죽을 때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음이 가장 좋습니다라는 말을 3번이나 되풀이하면서 기쁨으로 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영국의 여왕 엘리자벳 1세는 죽을 때 내 생명을 한 치라도 더 연장시켜주면 100만 불을 주겠노라고 소리 쳤다고 합니다.
이제 생명의 주이신 예수께서 나인성으로 들어오시다가 시체를 앞세우고 슬픔에 쌓여 무덤으로 나가는 대열을 멈추게 하셨습니다.
이 죽음의 대열을 멈추게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이 명령은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자의 명령이요 사랑의 명령이었습니다.
이 명령에 죽음의 권세도 물러갔습니다. 죽은 자가 일어나고 말도 했습니다. 이런 기적이 일어나니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절망이 변하여 소망이 되었습니다.
이제 무덤을 향해가던 발검음이 예수를 앞세우며 다시 기쁨으로  노래하며 나인성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인간들이여 아직도 슬픔의 대열에 절망의 대열에 서서 시체를 앞세우고 가십니까? 예수를 만나세요. 영접하세요. 그러면 주님은 청년아 일어나라고 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일어나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때 우리 함께 지금까지 미덥지근하던 믿음이 불같은 믿음으로 변하여 보무도 당당히 나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달리는 말에 더욱 채찍을 가하듯 이제는 더욱 기도에 힘쓰고 성경공부를 열심이하여 성령 충만하여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십시다.
시체를 앞세우고 무덤을 향한 발검음이 아니라 예수를 앞세운 기쁨이 넘치고 승리하는 발검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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