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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삼 목사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이 말은 주 안에 있다면 모든 것 할 수 있다는 말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실지는 그렇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어쩌면 주안에 있지 않기 때문이거나 있다 해도 주님께서 주무시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우리는 하늘을 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비행기 안에 있으면 창공을 비행할 수 있습니다. 태평양을 걸어서 한국에 갈 수는 없지만 배에 타면 갈 수 있습니다.
주 안에 있으면 죄악이 관영한 이 세상에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고 주안에 있으면 죽음이 나를 이기지 못하고 천국에 도달 할 수 있습니다.
예수 안에 구원이 있고 예수 안에 생명이 있고 사랑이 있고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비행기에 대하여 알 때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과 그 고마움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처럼 예수를 믿어야 그를 알 수 있으며 구원 생명 사랑 소망을 깨닫게 되고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비행기에 대하여 모르면서 어떻게 그렇게 큰 것이 하늘을 날수 있느냐 비과학적이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불쌍한 자여 속는 셈치고 비행기를 타 보시라고 말할 것입니다.
불쌍한 자들아 예수 믿어 보시라 그리하면 알게 될 터이니 하고 말해봅니다. 동화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개와 고양이 둘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개가 고양이에게 내가 어느 길로 가야할지 네가 좀 가르쳐 주겠니 고양이가 그건 네가 어디로 가고 싶어 하는지에 따라 그 길이 달라질 수 있어 개가 하는 말이 아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어 그렇다면 어느 길로 가야할지 상관할 것 없지 않니 하지만 나는 가고 싶어 그러면 그 자리에 앉아 나는 가고 싶어 그러고만 있으면 되는 거야 그러다보면 어딘가 가게 될 거야 하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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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싫어도 가는 길 가만히 있어도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길 앉아 길을 선택하지 않아도 가는 길에서 인간은 앉아서만 인생철학을 논합니다. 인생은 누구나 영원히 살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영생의 비행기나 배를 타야하는데 그런 것이 어디 있느냐고 하면서 따집니다.
그런 것이 있다고 하면 웃긴다고 하면서 믿지 않습니다. 인간은 그렇다고 그 길을 가지 않고 그대로 있을 줄 아십니까? 여기 영생의 배 영생의 비행기가 있다고 하는데도 말입니다.
노아의 방주와 같은 교회 이 방주에 탈 때 주안에 있으면 영생을 얻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아 또 그 예수 믿으라는 소리냐고 하면서 코웃음을 칩니다. 불쌍한 인간들입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우리는 그 비행기를 탔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주 안에 있으면 구원이 있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왜 이렇게 고생해야 합니까? 문제가 많습니까? 만약 미국에서 배를 타고 한국까지 가려면 참으로 먼 길입니다.
가는 동안 풍랑은 반드시 있으며 멀미를 하거나 병을 앓을지도 모르고 기운이 빠질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배는 한국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그 동안의 고통은 각오하고 참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건너편으로 가는 동안 큰 광풍을 만나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주님께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나이까? 이렇게 고생하는데 죽게 되었는데 배를 타고 가자고 해서 가고 있는데 주님 말씀대로 하는데 이 고생이 어쩐 일입니까? 왜 돌보지 않습니까? 당신 말이 거짓말이 아니냐고 제자들은 어쩌면 한탄했을지 모릅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분명히 주안에 있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것은 주님이 주무시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깨어서 바람을 꾸짖으시니 잠잠케 되었습니다.
인생은 그 누구나 넓은 대해를 항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제각기 특수한 난관과 시련을 경험하게 됩니다.
때로는 누구나 다 겪는 세속적인 시련을 겪기도 하고 영적인 시련 속에서 고민도 합니다.
인생의 대양은 조용하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폭풍과 폭우가 언제 들이 닥칠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먼저 내가 타고 있는 배를 잘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어떤 배를 타고 있는지 주님이 함께 타고 있는지 말입니다.
그런데도 배가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이때 주님이 내 배에 타고 있다면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않겠나이까? 하고 울부짖을 수 있습니다.
만약 주님이 함께 타고 있지 않다면 그것이야 말로 낭패입니다.
사도들은 폭풍을 통해 예수님의 능력을 깨닫게 되었고 신앙이 돈독해 진 것같이 때로는 시련이 우리들을 선으로 인도할 뿐 아니라 더욱 신앙을 굳게 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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