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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삼 목사

 

고난도 걱정 근심도 없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그런 삶은 없습니다. 오직 우리의 소망인 하늘나라에 가서야 있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이 땅에서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 돈을 벌면 어떨까 권력과 명예와 많은 종교에 몰두해 보기도 합니다.
우리는 입을 모아 만복의 근원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기도할 적마다 우리의 고통을 제거하여 달라고 축복하여 달라고 하는 말을 빼놓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분명히 복의 근원이시며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알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니라”(빌1:29)고 말씀하심으로 하나님은 우리로 고난도 받게 하신답니다.
욥기에 보면 사탄이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욥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욥에게 많은 복을 주신 하나님은 욥에게 고난도 주셨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물론 직접 주신 것은 아니지만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고통과 고난은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하지만 하나님이 직접 주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거기에는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랑의 하나님이 자비하고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이 인생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가? 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이 세상에서 고난을 없이 하지 아니하시는가? 어찌하여 예수 잘 믿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보려고 애쓰는 자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며 하나님의 교회가 고난을 당하도록 내버려두시는가? 사실 악한 사람이 고난을 받으면 그것은 당연하다고 별로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선한 사람이 아니 믿는 성도가 교회가 고난을 받는 것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게을러서 일하지 않아서 가난하다고 하면 그건 누구나 이해하고 수긍하기 쉽지만 부지런히 일하고 열심히 노력을 해도 찢어지게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건 무엇으로 설명해야 합니까? 상선벌악이 하나님의 공의라고 하면 선한 사람은 상을 주어 잘되게 하고 악한 사람은 벌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가 맞는데 이 세상에는 도리어 악한 사람이 더 기세를 부리고 잘되는 수도 있으며 착하고 정직하고 의로운 사람이 불행할 수가 있으니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욥은 고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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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우리도 고민합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심을 분명히 믿고 있는데 실제로 이 세상을 보면 그렇지가 않는 것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욥은 부르짖습니다.
내가 복을 바랐더니 화가 왔고 광명을 기다렸더니 흑암이 왔구나. 철학자 까뮈는 그의 책 혼미의 첫 머리에 죄악이라니 무슨 죄악 이 세상에 죄가 어디 있고 의인이 어디 있단 말이냐? 모두 뒤죽박죽 뒤죽박죽이구나 하고 외쳤습니다.
스펄죤 목사는 사람들이 신발을 머리에 쓰고 모자는 발에 신고 다닌다고 말했습니다.
정말 세상은 모순투성이며 뒤죽박죽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말하기를 모든 고난은 성도를 훈련시키기 위하여 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 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벧전4:12)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2-4)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잠17:3)라고 합니다.
한국 입시제도 때문에 많은 골치를 앓고 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개선한다고 자꾸만 바꾸어 봅니다. 고3학년 학생들이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정신을 못 차린다고 야단입니다. 아예 없애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은 이 입시제도가 학생들로 하여금 공부하게 하는 것입니다. 미국에는 입시제도가 없다고 좋다고 하지만 사실은 더한 고등술법의 입시제도입니다.
한국은 고3때만 열심히 공부하여 성적을 올리면 되지만 미국은 고등학교 전체를 보며 인간성 활동성 등을 보기 때문에 1년만 열심히 노력해 가지고는 소용이 없고 몇 년 동안 열심히 모든 면에 노력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람들은 입시제도를 없애자고 하지만 그것이 있기에 우리도 그런 관문을 통과했기에 오늘날 이렇게 꾿꾿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하나님은 성도들을 고난을 통하여 정금 같은 믿음으로 훈련시키심을 알고 불평 없이 합격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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