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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삼 목사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나이팅게일에게 준 기념 훈장에는 긍휼을 행하는 길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돈으로써만 아니라 말로도 할 수 있다 돈도 말도 없을 때는 눈물로 할 수 있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긍휼은 억지로 하지 않습니다. 긍휼은 이중의 복을 가지고 옵니다.
주는 자에게 복을, 받는 자에게도 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는 자들은 사람들이 흔히 듣기 거북해 하는 메시지도 과감하게 전해야만 합니다.
듣기 좋은 소리 칭찬만 하는 메시지를 전하여 인간 위주의 설교가 되면 그것은 더 이상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떻습니까?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 전하기를 거역하다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다가 용서함 받고 다시 땅위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요나는 마치 침례를 받은 자처럼 물속에 잠겼다가 다시 물위로 올라온 부활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정전 후에 다시 불이 들어오면 온 방안이 더 밝게 보이는 것같이 요나는 캄캄했던 소올의 뱃속에서 다시 육지로 나왔을 때 온 세상은 너무도 밝고 찬란했을 것입니다.
해방된 인간의 영혼이 기적의 해변에서 구원의 감격을 노래하며 하나님께 새로운 헌신의 무릎을 끊습니다.
요나가 자신이 토해진 해변가에서 구원의 하나님께 할렐루야를 크게 외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요나야 이제 집으로 돌아가라 네가 불순종했지만 그것을 깨닫고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한 것을 기뻐하노라 하지만 너는 내게 더 이상 쓸모가 없다 해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잘못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재차 사명을 주셨습니다. 한마디로 요나를 쓸모없는 인간으로 낙인찍지 않으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려 하심이니라”(고후5:21)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을 섬기게 하기 위하여 구원하여 주신 것입니다. 요나도 그렇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섬기도록 회복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또 한번의 기회를 얻은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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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기에게 해를 끼쳤거나 맡겨준 일을 크게 망친 사람에게 같은 일을 선뜻 되 맡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를 버리고 도망친 요나를 너그럽게 용서하시고 다시 불러 주었습니다.
만일 단 한 번의 부름으로 우리들의 구원이 결정된다면 그 누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겠습니까? 만일 우리들의 죄 많은 불순종의 과거가 용서되지 않는다면 누군들 하나님의 포도원에 다시 고용될 자가 있겠습니까? 예수님도 자기를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왜 나를 배신했냐고 책망하지 않고 오히려 그가 회개했을 때 용서해 주시고 내 양을 치라고 귀한 사도의 특권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곤경 가운데서 죽게 하시고 다른 사람을 보내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죄인들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은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대로 처리하시지 않고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그것이 오늘날에도 죄인들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선포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이 두 번째 소명은 요나가 불순종을 하기 전에 받았던 소명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요나를 다시 찾아 주시고 그 일을 그대로 되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의 품위 회복에 큰 관심을 두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요나를 물고기 뱃속에 가두신 것은 요나의 수치심을 불러일으키고 남들의 조롱거리가 되게 하려는 보복조치가 아니었습니다.
돌아온 탕자의 아버지는 목을 안고 그 입을 맞추고 제일 좋고 값비싼 새 옷을 입혀 주고 가락지를 끼우고 또한 환영의 뜻으로 살진 송아지를 잡고 잔치를 얼었습니다.
이렇게 아버지는 탕자에게 떳떳한 자식의 품위와 권위를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요나는 구약의 탕자입니다 누가복음의 탕자가 더러운 돼지 쥐엄을 먹고 생명을 유지하던 일이나 요나가 시궁창 같은 물고기 뱃속에서 생명을 유지한 것은 대동소이합니다.
또한 신약의 탕자가 자식의 특권과 위신을 도로 찾은 것이나 요나가 선지자의 직책을 다시 수행한 내용도 동일합니다.
하나님은 구약의 탕자에게 두 번째 소명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그 선하신 뜻을 절대 바꾸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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