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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을 우리나라 등반대가 정복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 참으로 장하다고 탄성을 지릅니다.


그러다가 한 사람이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왜 그렇게 위험한 산을 오르려고 하는가하고 의문을 갖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등반가들은 산 정상의 모습을 보면 거절할 수 없는 도전에 이끌리게 된다고 합니다.
사도바울은 진정한 영적 등반가였습니다.


내가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고 이것이 곧 크리스챤의 생활입니다.


얼마나 멋지고 스릴이 있는 생활입니까?


바울은 자신의 영성에 대해 만족치 않고 주님을 본받는다는 의미에서 이미 이루었다는 어떤 생각도 멀리 뿌리친 채 넘치는 기운으로 달음질쳐 나아가는 모습에서 신자의 삶을 비추어 말하고 있습니다.


이 땅은 신자들의 본향이 아니기에 우리의 삶은 오직 나그네의 여정일 따름입니다.


신자의 일생은 등반가의 삶입니다. 미래에 받을 부름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천성문을 바라보며 앞으로 올라가는 삶입니다.


바울은 먼저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되었다는 말씀에서 우리들의 출발점이 어디인지를 먼저 말해줍니다.


바울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지 않았다면 결코 돌아올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처럼 드라마틱하게 구원을 받은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구원 얻은 자의 원리는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제자 됨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부터 바울의 표현대로라면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됨으로써 시작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맨 먼저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일이 있고나서야 비로소 인간의 삶 가운데 영적인 일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 일에는 영적인 생명의 탄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장례를 치르는 곳에 와서 시체더라 정직한 삶을 살라고 격려하려 한다면 그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시체는 죽어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말이 어떤 목적을 지니기 위해서는 먼저 시체를 살려야할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제자로의 부르심은 먼저 영적으로 죽어있는 사람을 살리시는 하나님이 능력으로부터 시작해야합니다.


왜냐하면 그때에야 비로소 그러한 부르심에 대한 모든 일들에 반응이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중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회심이 있기 전에는 인간은 그의 허물과 죄 가운데 죽어 있다고 말합니다.


그 인간은 육체적으로 그리고 지적으로는 살아있으나 영적으로는 살아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영적인 자극들에 반응할 수가 없습니다.


그가 이러한 상태에 있는 한 하나님의 말씀은 그에게는 숨겨진 책과 같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허튼소리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께서 그의 삶에 손을 대십니다.


하나님의 이런 손길은 죽음으로부터 생명 즉 영의 생명을 가져옵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경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잡힌바 되었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붙잡힌바 된 사람입니다.


그는 갈대와 우르에 이방인의 문화 가운데 살고 있을 때 어쩌면 만족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시어 가나안으로 길을 떠나게 하셨습니다.


모세는 어떠합니까?


갓난아이였을 때 즉 바구니에 담겨 나일 강에 떠있을 때 잡힌바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께 잡힌바 되었습니다. 그의 손에 붙잡혀 그의 소유가 된 것입니다.


중생은 사람이 만드는 어떠한 결단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인간의 무관심과 죄악 된 반역의 아성을 뚜벅뚜벅 걸어들어 오시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성령께서 영혼의 성을 허물고 진군하시는 것입니다.
주도권은 언제나 하나님이 쥐고 계십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나를 붙잡으시고 자기의 것으로 삼으신 것을 이제 나의 것으로 끌어안기 위해 앞으로 줄곧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회심하였을 때 하나님이 자기를 구원하신 목적과 이루시고자 하는 것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간절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을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바울은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롬8:29)라는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구원하신 목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네 그분의 목적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이 일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쫓아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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