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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삼 목사  


구원에는 세 단계가 있는데 주님을 믿음으로 인해서 과거의 죄에서 의롭다함을 얻는 단계 믿음으로 인해 주만 바라보며 굳게 서서 주님 따라 행하는 현재의 악에서 성화되는 단계 그리고 드디어 죄와 상관없는 영화 되는 단계 이 단계야말로 우리들의 소망이요 하늘나라의 기쁨이며 완성입니다. 

역사의 완성은 인간의 구원이 완성될 때에 이루어집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들이 드디어 이 영광에 참여할 것을 믿었으며 이 영광이 지금은 가리워져서 보이지 않고 있으나 나타날 날이 오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초기에 교회가 핍박을 당하고 있었을 때 자신의 신앙을 부인하지 않으려 하던 몇몇 믿는 자들이 군병들에 의해 산 위로 끌려가 신앙을 부인하도록 견딜 수없는 추위를 겪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얼음 속에 벌거벗기게 되자 큰소리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택함받은 열명의 그리스도의 군병 주님을 위하여 기꺼이 고난받으리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 음성은 작아지고 그들 가운데 한 명이 자리를 떠났습니다. 

이것은 배신의 표였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군병 가운데 한 명이 옷을 벗고 남은 아홉명과 함께하기 위해 달려왔습니다. 

그도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고난에 동참할 수 있는 자는 장차 나타날 하나님 나라에 대한 확신과 소망을 갖는 자입니다 

이러한 소망이 없는 자는 감히 목숨을 던지면서까지 고난의 사역에 동참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고난이 없을 수 없습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요 고난은 성공의 밑거름이라는 말도 있듯이 고난이 주는 쓰라림과 유익함 속에서 인생은 울고 웃으며 살아갑니다.

신앙인의 고난의 삶은 영광에 이르는 여정입니다 

모세는 광야를 거쳐 하나님의 산에 이르렀고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생활을 통하여 가나안에 도착하였으며 예수께서는 멸시와 능욕과 십자가상의 죽음의 고통을 겪으신 후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였습니다. 

세상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고난이 있습니다. 

크던 작던 부자나 가난한 자나 권세있는 자나 거지같은 인생에게까지 고난은 있습니다. 
흔히 신앙생활을 하면 고난이 없어지게 될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신앙생활은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이라고 말하며 그와 함께 사는데서 오는 새로운 고난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세상이 사탄의 유혹과 활동 하에 있으며 이 악의 세력이 여러 가지 가면을 쓰고 선과 정의와 조화의 정신을 괴롭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챤은 고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교회는 이것을 몸에 배도록 경험해서 알고 있었으며 이것은 견디기 어려운 시련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늘 그런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천지의 주재시오 주는 부활의 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새 시대가 오며 고난 중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영광이 나타날 때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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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이 영광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약속하십니다.

이 영광에 비하면 지금 받는 고난쯤은 비교도 안 되는 적은 것이니 참고 인내로 그날을 바라보며 참고 이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현재의 고난에도 참여하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영광이 나타날 것이 확실함은 피조물들의 고대하고 있는 것으로 증거됩니다. 

만물은 무심히 나서 없어지거나 일어났다가 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마음 깊은데서 만물이 발하는 심각한 탄식 소리를 들었으며 대망하고 있는 그 열정을 느꼈습니다. 

마치 인간의 신체 속에 깃들인 영이 죄의 몸에서 해방될 날을 바라듯이 만물들도 그 구원될 날을 간절히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의 힘으로는 도달할 수없는 일이며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여야만 해결될 의존 관계에 있는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만물이 저주를 받고 썩어짐의 종이 되어 허무한데 굴복한 것이 제 뜻으로 된 것도 아니며 자기의 잘못으로 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인간의 죄로 인하여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날을 피조물들은 간절히 고대하고 있으며 하나님이 아들들의 영광을 회복할 때에는 만물도 함께 그 영광의 자유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만물이 고대하며 신음하고 있는 것은 희망없는 죽음의 예표가 아니라 생명의 예표입니다. 

보다나은 질서에 대한 해산의 고통입니다 

자연은 파멸하는 것이 아니라 갱신을 가르칩니다. 

자연의 현재상태는 그 본래의 상태도 아니고 그 최후의 상태도 아니라고 지적하였습니다. 
다만 자연이 현재상태보다 나는 장래의 예표에 불과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완성된 세계는 불완전한 것을 자유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변화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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