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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삼 목사

 

누가복음 15장에 잃은 양, 드라크마를 잃은 여인, 집을 나간 탕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 가지 비유를 같은 비유라고 잘못 알기 쉽습니다.


잃은 양을 찾는 것이나 잃었던 동전을 찾는 것이나 잃었던 아들을 다시 맞이하는 기쁨은 다 잃었다가 찾았다는 것으로,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런 뜻 없이 같은 이야기를 세 번이나 반복할까요?


첫째 비유에는 죄인이 어리석게 방황하고 있는 한 마리의 양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한 마리의 양이 자기가 길을 알고 있는데도 방황하겠습니까?


모르니 방황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지 때문에 방황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참 뜻과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뜻이며 십자가와 부활을 모르기 때문에 그저 살기에 바빠서 정신없이 힘든 싸움을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불쌍히 보고 구원하여야 됩니다.


둘째 비유에서는 그들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과 하나님의 인이 찍혀있는데 스스로 상실된 가운데에 던져버렸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는데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교제의 길이 끊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가장 큰 비극은 셋째 비유에서 보여주는 것같이 아버지의 사랑을 알면서도 그 사랑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좋은 것이 있을 줄 알고 집을 뛰쳐나간 탕자의 죄가 제일 큰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 탕자를 기다리시며 다시 회개하고 돌아올 때 기쁨으로 맞이하여 주신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첫째 비유로 다시 돌아가서 보면 아흔 아홉보다 잃은 양을 위해 주님은 이 땅위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즉 나는 잃어버린 자 라는 사람을 위해 오셨다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연히 주님을 찾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 속에 빠져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불쌍히 보시고 이 땅위에 오시어서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까지 지셨는데도 인간들은 그것을 모르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이 시간에 돌아선다면 주님은 양을 찾아 메고 오듯 기쁨으로 안전한 곳으로 메어다 내려놓으십니다.


그곳이 교회입니다.


그런데 둘째 비유에서 보는바와 같이 교회에 메어다 놓았는데 하나님의 인이 찍혔는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또 잃어버렸습니다.


첫째 비유에서 잃어버린 곳은 광야인데 즉 세상이었지만 둘째 비유에서 잃어버린 곳은 집안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잃어버린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잃어버린 불쌍한 양도 찾아야 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잃어버린 드라크마도 찾아야 합니다.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그것을 발견할 때까지 말입니다.
등불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으로 깨우쳐야합니다.


정말 인간이 동전이라면 찾기가 쉽겠습니다.
집을 온통 뒤지면 찾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인간이 어디 동전입니까?


인간 스스로 말씀을 배우고 깨우치기 전에는 힘이 듭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들의 좁은 생각 교만 다 쓸어내야 합니다.
처음에는 집을 발칵 뒤집은 것같이 엉망진창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찾은 후에 잔치를 베풀어주십니다.
그런데도 그 아버지의 사랑을 외면하고 집을 뛰쳐나가겠다고 합니다.
이때 아버지께서 강압적으로 막지 않고 내버려두심을 안타깝게 생각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자유 의지를 가진 존재로 만들었기에 하나님이 싫다고 할 때 다른 곳에서 자유를 찾아보려고 할 때 하나님은 막지 않고 내버려두시므로 스스로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 자신의 정욕과 세상의 유혹 속에서 스스로 자기 자신을 시험해보도록 허락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붙드시지 않은 것은 고차원의 사랑 때문에 스스로 깨닫고 돌아서야 차원 높은 사랑을 깨닫게 되기에 막으면 오히려 불평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왜곡하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잃은 양이십니까? 방황치 말고 주님을 영접하세요.
그는 여러분을 메고 안전한 자리에 옮기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있다고 너무 기뻐하지 마십시다.


또한 잃어버린 동전을 너무 나쁘게 평하지 마십시오.
그 여인이 부주의해서 잃어버렸습니다.
목사의 부족으로 교인들의 잘못으로 잃어버릴 수 있음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동전이 아니기에 서로 이해하고 서로 격려하며 잃어버리지 않도록 말씀의 등불을 밝혀야 합니다.


방안이 밝으면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돌아온 동생을 기쁨으로 아버지와 같은 심령으로 환영하고 맞이하는 넒은 아량을 키우십시다.
이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우리는 알 것 같지 않습니까?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같이 우리도 모든 문제를 이기고 부활의 신앙으로 무장하여 승리하게 하옵소서.
기도하면서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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