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삼목사-02.gif

이창삼 목사  

 

 

성도는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자라고 불리어져 있습니다.


성령 받은 자는 영적으로 이미 새 세계에 들어가 있지마는 육적으로는 아직 그 특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탄식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몸의 구속을 기다린다고 하였습니다.


온전한 구속은 육의 몸이 구속되고 영광의 몸이 되어 그리스도와 온전히 사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는 그 단계에 도달한 것이 아닙니다.


현재의 구원은 이것을 바라는 구원입니다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의 완전한 실현을 위하여 더욱 열심히 사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참지 않고 포기할 때는 구원을 완성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구원을 받은 것은 그것을 완전한 소유로서 받은 것이 아니라 그것 역시 소망 중에서 받은 것입니다


완전히 이루어진 현실로써 받은 것이 아니라 육신과 외부적인 조건 아래 있는 한 우리들의 소망 중에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다 이처럼 우리의 구원은 처음부터 장차 우리에게 이루어질 축복의 소망으로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바라는 소망이 이미 다 이루어졌다면 우리들에게 소망이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니라 우리들의 완전한 축복이 미래에 속하여 있는 것과 같이 구원도 우리들이 현재 그것을 즐길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 없습니다.

 

0.JPG

 


그러므로 크리스챤에게 고통의 생활이 따르는 법입니다


 엠마오로 실망 속에서 하향하던 두 제자에게 주님은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눅24:25)고 나무라셨습니다.


하물며 그를 믿는 우리에게 영광에 이르기 위한 고난은 필연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베토벤은 고난에서 영광으로의 일생을 살았고 유명한 제 9번 교향곡은 고난을 주제로 한 곡입니다


바울은 영광에 이르는 좁은 길이 마치 고난 속에 가로 놓여 있는 것처럼 말하였습니다.


장차 언젠가 모르지만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하여 검은 구름을 헤치고 나타날 빛나는 광채를 생각한다면 현재의 고난 같은 것은 생각할 가치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아들들에 관하여서는 우리들은 진심으로 기다리며 고난을 참는 중에서 기다려야 될 줄로 압니다.


현재의 고난이라는 캄캄한 상태에서 바울은 신자들이 누릴 장래의 영광을 묘사하였습니다.


장차 올 영광이 훨씬 우월하기 때문에 신자들은 현재의 고난 중에서 참고 견디어야 된다고 바울은 격려하고 있습니다.


모든 완성은 미래에 있습니다.


세상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하시리로다고 말합니다(계11:15)


역사의 완성은 역사의 바른 지배자를 얻는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선포 내용도 바로 이점을 말했습니다.


오랫동안 반역자의 지배하에 있던 이 세상이 다시 정당한 지배자이신 창조주와 그의 기름 부으신 자 곧 그리스도에게 돌아가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때에 승리하신 구속 주께서는 모든 원수를 발등 상되게 하시고 그 완성된 나라를 아버지 앞에 바치십니다(고전15:24-28)


그의 구속의 사업은 여기에 이르러서 완성됩니다.


모든 문제와 결함을 내포하여 온 역사는 여기서 완성됩니다.


모든 문제의 완전한 해결은 이 세상에는 없고 오직 이 세상을 넘어서 역사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만 있습니다.


오늘의 구원은 소망을 바라보는 구원입니다


아버지의 약속을 바라보는 구원입니다


운동선수는 자기가 하기 싫으면 상이고 무엇이고 다 포기하고 그만둘 수 있지마는 우리는 우리가 원한다고 포기한다고 죽음을 면할 수는 없습니다.


이왕 죽을 바에야 하늘나라에서의 상급을 바라보고 오늘의 고통을 이겨야 되지 않을까요?

 
오늘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다면 나는 하나님 앞에 어떠한 모습으로 설 수 있을까요
소망을 바라보는 성도들이 되십시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주신 것은 곧 가나안땅이 아니었습니다.
소망 중에 가나안을 향해 가는 광야의 40년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님의 구속 사업은 완성이 아니라 천성문을 바라보며 소망 중에 광야와 같은 인생길을 하나님을 믿으며 주님을 의지하고 참고이기며 나아가게 오직 전진만을 명하는 구속이요 은혜입니다


완성은 미래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날의 영광은 오늘의 고동의 비할 바가 아님을 바울은 역설하면서 우리가 믿음을 지키고 승리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여러분 주님 오시는 그날 어떤 모습으로 아니 하늘나라에서 하나님 앞에 어떠한 모습으로 서시기를 원하십니까?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아멘!

신앙/사모컬럼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