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순호-01.jpg

글: 현순호 목사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오신 예수님 (낮은 자리로)  

(마 17:1-13)



어느날, 예수님은 사랑하는 세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서 변형을 하신다. 

그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옷은 빛과 같이 희어졌다. 


그리고는 율법의 창시자인 모세와 예언자의 대표격인 엘리야와 같이 장차  예수님이 당하실 시련과 십자가 그리고 부활과  승천에 대해 말씀을 나누는 것이었다. 


그 장면을  본 제자들은 그 기이한 장면에  황홀해 지고 신비의 세계를 체험했다. 


예수님과 같이 살다보면 언젠가 그 찬란한 곳에서 오래오래 살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기고  더욱이 마음이 잘 통하는 사람들 끼리  모이면 그 곳이 바로 천국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식생활을 해결하는데 급급하고 또한 그 와중에 발생하는 끝없는 갈등과 싸움에서 헤어나지도 못하고   불의와 불법이 성행하는 세상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던 그들은 이상적인 세계를 보고는 그런  환상의 세계에서 살고 싶어졌다. 


예수님만 계시면 어떤 곳이라도, 아니 이런 척박한 산에서라도, 개간해서 씨를  뿌리고 가꾸어 추수해서 뜻이 맞는 사람들 끼리 정답게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 때 성격이 급한 베드로가 한 마디 던졌다. 


만일 선생님이 원하시면 이곳에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선생님을 위해서, 하나는 모세를 위해서, 또 다른 하나는 엘리야를 위해 준비하면 어떻겠습니까? 


우리가 옆에서 잘 보필하겠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빛난 구름이 그 들을 덮으며 들리는 음성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사랑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였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산 밑으로 내려가자고 재촉하신  말씀을 상기했다. 


여기에서 베드로의 생각과 예수님의 뜻은 엄청 난 차이가 있음을 볼수 있다. 


베드로는 살기 힘든 세상을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서 마음이 잘 통하는 분들과 정답게 살고 싶어 지옥같은 산 밑으로 내려가지 말자고 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뜻은 달랐다. 


동물의 왕국 같은 산 밑의 모순된 세상을 피하기 보다는 그 속 으로 들어가 한알의 밀알이 되자는 것이다. 


세상 어디를 가나 시련과 고통이 있는 그 곳을 피해 도망갈것이 아니라 그 속에 내가 들어가 죽어서 한 알의 밀알이 되어 그 속에서 새로운 생명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많이 맺어 다른 사람들이 따 먹게 하자는 것이다.  


길을 만들고  우물을 파서 생명수를 마시게 하고  다리를 놓고 앞에 가로 막힌 산에 터널을 파서 소통이 원할하게 하자는것이다.  


아픈 사람을 치료해주고 외로운 사람들을 위로하며  꿈과 희망을 주고 내세를 보여주는 일을 같이 하자는 것이다.


이웃들 간에는 경쟁의 대상자가 되기보다는  사랑의 대상자로 삼고  서로 배려하고 사랑하며 조물주가 보여준 사랑하는 법을 따라 다 같이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자는 것이다. 


현순호목사.jpg



여기에 기독교의 생명이있다. 


내가 존경하는 한 후배가 있다. 


그는 몇대째 내려오는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고 공부를 잘해서 명문 대학교 의대를 졸업하고 전문의가 되었다. 


그는  미국에 와서도 미국의 전문의가 되었다. 


그 앞에 레드 카펫이 깔리게 되었는데 다른 생각을 했다. 


부모님들에게서 배운 교훈은 너 만을 위해 살지 말고 남을 위해 살라는 교훈이었다. 


그는 신학을 공부해서 미국교회의 목사가 되었다.  


그 분은 그 안정된 자리를 양보하고 미국의 한  작은 지역의  한인 이민 교회의 목사가되어 새땅에 정착하는 교포들과 같이 웃고 울며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고 있다. 


고금을 통해서 존경과 사랑을 받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더 높아지고  더 가지려는 노력 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주고 서로 서로 사랑하며 미래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일에 심혈을 바치는 면이다. 


나도 그런 일에 작은 한 모퉁이라도 감당 할수 없을까? 생각해본다.


신앙/사모컬럼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