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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삼 목사

 

두 명의 기독교인이 함께 기차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자 한 사람이 도시락에서 두 개의 샌드위치와 우유를 꺼내어 먹기 시작합니다.
미처 점심을 준비하지 못한 다른 사람은 배고픈 듯 한 눈초리로 쳐다만 보고 있습니다. 드디어 그가 두 번째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하자 더 이상 못 참겠기에 그 사람이 입을 열어 말합니다.
나는 최근에 주님의 계명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아십니까? 거참 좋은 말씀입니다만 나는 또 다른 말씀을 알고 있습니다.
네 이웃의 것을 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 사람 모두 성경을 이용하여 말하고 있지만 과연 이것이 크리스챤의 모습일까요 어떤 율법사가 주님을 시험하고자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까? 하고 질문하자 주님은 율법에 무엇이라고 했느냐고 물으니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였나이다. 라고 대답하자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고 하니 이 율법사는 자기는 이웃이 누구인지 몰라서 사랑하지 못한다는 투로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이오니까? 할 때 주님은 이 비유로 대답하였던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여기서 잠깐 비록 율법사의 의도는 불순한 것이기는 하나 그 질문은 우리 인생들로서는 가장 중요한 삶의 관심사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영생의 획득에 관한 이 물음은 율법사 외에도 수천 년간 많은 사람과 다양한 학문들이 여러 각도에서 이 내용으로 질문해 왔으며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리고로 가는 길에서 강도 만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불쌍한 사람 옆으로 제일 먼저 제사장이 지나갑니다.
유대교의 종교적 대표자 성전 예배와 또 행정 관리를 장악하고 멸실 공히 이 백성의 실권을 지고 있는 지도자 중 한사람인 제사장 그는 본래 그의 직무와 위치로 보아서 당연히 자비를 베풀어야 마땅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는 그대로 못본체하고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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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위에는 불쌍한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는 많은 상처를 안고 어려운 문제 병으로 고생하는 자 가정문제 직장문제 경제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로 어려운 가운데 있는 우리의 이웃이 많이 있는데 이들을 도웁고 사랑으로 보살펴야 할 교회와 목사들이 여기 제사장처럼 그대로 지나가듯 모른 체한다면 어떨까요? 아니 그대로 지나치지만 해도 괜찮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병신같이 강도를 만나 죽게 되다니 자기 죄 값이야 하며 저주하는 목사와 성도라는 사람이 있다면 이러한 사람을 우리는 이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 다음에 레위사람이 지나갔습니다.
이 사람은 제사장을 돕는 일 성전에서 모든 시중을 드는 일 율법을 묵상하고 날마다 배우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강도만난 사람을 구원하야 할 위치에 있는데 이 사람도 그냥 지나갑니다.
어쩌면 오늘날 교회의 직분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라는 뜻이 아닐까요?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반성해야합니다.
우리는 나는 이런 부류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할 자신이 있는지 그런데 마지막으로 한 사마리아 사람이 그곳으로 왔습니다.
그는 이방사람이요 종교적으로 멸시를 받는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가슴속에는 인간성이 살아 있었습니다.
그는 이 희생당한 사람이 누어있는 곳을 지나게 되자. 가던 길을 멈추고 측은한 마음이 솟아나서 힘껏 간호해주고 여관에까지 데려다 주고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바르고 싸매 주고 자기의 짐승에 태워 참된 정성어린 간호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는 율법에서 말하는 사랑이 나타나있습니다.
그리고는 데나리온 둘을 주막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달라고 만약 부비가 더 들면 돌아올 때 갚으리라고 하면서 부탁합니다.
이것은 일시적인 즉흥적인 사랑이 아니라 끝까지의 책임을 다하는 사랑의 모습입니다. 간혹 일시적인 사랑 즉흥적인 사랑은 그 분위기와 그때의 기분에 좌우되어 순간적으로 하는 사람도 있으나 시간이 지나가면 식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참된 사랑은 끝까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제사장 레위사람 모두 인정이 없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사랑이 없음을 탄식하며 실망하지 말고 사람들에게 천대받는 사람이 참된 마음으로 돌보았다는 사실에 희망을 가지십시다.
오늘날 교회와 목사들 재직들 가운데 사랑이 부족함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사마리아 사람 같은 목사 성도 교회가 있음을 감사하십시다. 우리는 과연 어떠한 사람입니까? 우리 교회는 어떠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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