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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진 교수

<前 서울신학대학교 총장, 前 한국기독교학회장>



몇 년 전 독일에 다녀오던 중 비행기 안에서 카일 아이들먼이 쓴 『팬인가 제자인가(Not a Fan)』를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당신은 예수님의 팬인가, 제자인가?”라는 중요한 질문이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저자는 그리스도인을 ‘팬’과 ‘제자’로, ‘관광객’과 ‘순례자’로 구별해 진정한 그리스도인과 제자의 삶을 제시합니다. 


또 그 길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단호하게 제시합니다. 

저 자신도 저자의 서릿발 같은 문장 앞에서 고개 들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스타를 찾아다니는 팬


사전에서 팬(Fan)을 찾아보면, ‘누군가를 열광적으로 좋아하고 추종하는 사람, 애호가’라고 나옵니다. 

요즘은 TV드라마 주인공, 가수, 운동선수, 연예인이 각광받는 시대입니다. 스타마다 자신을 좋아하는 팬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오빠부대와 일본의 아줌마 부대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스타에 푹 빠져서 울기도 하고 기뻐 환호하고 자기감정을 카타르시스해서 삶에 활력소를 얻는다는 공통점을 갖습니다. 


그런데 팬은 선수 이름을 새긴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 관람석에 앉아 응원하지만, 정작 경기에는 나서지 않습니다. 경기장에서 수고스러운 어떤 역할도 하지 않습니다. 


경기장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호흡을 함께하는 것 같지만, 정작 경기의 당사자는 아닙니다. 

팬들은 스타를 한없이 따라다니다가도 동경하던 그 스타가 자기 기대를 저버리면 그에게서 돌아섭니다. 


좀 지나다 보면 그렇게 대단하게 여기던 스타를 버리고 새로운 스타를 찾아 열광합니다. 

다 떠나가 버립니다. 


이것이 팬의 특징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서 구름처럼 몰려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예수께 열광한 팬들도 주님을 열심히 쫓아 다녔습니다. 


각종 병 고침과 수많은 이적, 천국을 말씀하실 때 주님을 가까이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요6:2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에게 열광하는 이들을 제자가 아니라 팬이라고 낙인찍는 말이었습니다. 예수께서도 그저 자신을 좇아다니다 덕을 좀 보려는 속내를 아신 것이지요. 



열광은 하되 그 뜻대로 살지는 않아


예수께서 제자의 도(道)를 말씀하시고 십자가의 길을 말씀하시고 이해하기 어려운 영적 참(眞)진리를 말하자 팬들은 순식간에 떠나버리고 예수 주위도 텅 비었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요6:66). 

예수께 열광하던 팬들은 대부분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들은 원래부터 예수의 제자가 되는 일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의 길을 제시하자 당장 그 길에서 이탈합니다. 제자가 아니라 팬이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현장에서 예수를 따르던 팬들은 예수를 욕하고 핍박하는 폭도로 변했습니다. 제자로 부름받은 11명도 다 도망쳤습니다. 


카일 목사는 『팬인가 제자인가(Not a Fan)』에서 그동안 잘못 목회한 점을 회개합니다.


“지금까지 예수의 제자가 아닌 팬을 양성하는 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나 역시 속았다. 


단순한 열광을 헌신으로 착각했고, 경기에 실제로 참여치 않는데도 너무나 많은 지식을 가르쳤고 경건의 모양으로 포장된 자신을 제자로 확신했고, 팬에 불과한 수천 명을 제자로 양성했다는 헛된 자부심을 가졌다.”


카일 목사는 미국의 많은 교회가 ‘제자들이 모여야 할 성전’을 ‘팬들이 성황을 이루는 경기장’으로 변질시킬 것 같아 안타까워합니다. 매주 팬들이 경기장에 몰려와서 예수님을 응원하지만 그들은 팬일 뿐 제자가 아니라고 정곡을 찌릅니다. 


스승의 삶을 살아야 제자


신학대학교 교수로 오랫동안 재직했고, 수많은 교회에서 설교한 저 역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소름 돋을 만큼 아프고 고통스러워 책을 읽고 난 다음 오랫동안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대개 교회를 다니고 있다면, 자기 자신을 막연하게 제자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제자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그들에게 진정한 제자의 길을 가라고 권하면 “현재 신앙생활 하는 것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더 강요한다면 교회를 떠나겠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예수의 제자가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 기준을 정해 놓고 그저 열정을 다해 예수님을 좋아하고 그냥 따르면서 만족하는 팬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스승과 제자는 개인적으로 소통하고 뜨거운 사랑의 줄이 있습니다. 


서로 깊이 알고 있습니다. 내면 세계까지 모두 볼 수 있을 만큼 알고 있습니다. 제자는 스승의 모든 것을 닮아 갑니다. 바로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제자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관심사는 교회를 다닌 연수가 아니라 진정한 제자로서 충성하는 길입니다. 영적으로 그리스도의 분량에까지 성숙해지는 것이 진정한 제자이기에 예수의 십자가 희생 그리고 구원의 기쁨을 알았다면 한 단계 더 성장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된 자로서 회개하고 피나는 영적 싸움을 하고 매일매일 죽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팬이 아닌 제자의 삶이고, 방랑자나 관광객이 아닌 순례자로 살아가는 삶이고, 제자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당신은 제자입니까? 아니면 그저 예수님을 좋아하는 열정적인 팬입니까? 


흰돌산수양관 직분자세미나에서 확인하고 예수 그리스도 제자의 길에 들어서서 제자의 길을 가기로 결단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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