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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현순호 목사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

(요 11:1-44)


기독교의 생명은 강 한 부활신앙이다. 


예수님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어 있다가 삼일 만에 부활 하시고 40일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 말씀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것을 믿는다.  

예수를 믿는 교인들도 언젠가 죽음의 관문을 통하여 다시 부활해서 영원한 천국에서 살 것을  확신한다.


예수님은  친구였던 나사로가 죽어 장사 지낸지 이미4일이나 지난 후에  그 무덤을 찾아가셔서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고 하시자 시체인 그 친구가  벌떡 일어나 나오는데 그의 그 얼굴에는 여전히 수건으로 덮여 있고  손과 발이 묶인 채로 나온 것이다. 


예수님은 주위 사람들에게 풀어주라고 하시니 나사로는 다시 정상적인 생활을 할수 있었다. 

예수님께서 죽은 사람을 살리신 일은 더 있다. 


어느 날 라인성이라는 곳에 전도하러 갔는데 장례식을 보게되었다. 


가난하고 외롭게 사는 한 과부가  온 세상을 주고도 바꿀수 없는 외아들이 죽어 장사 지내는데 그  괴부는 땅을 치며 통곡을 하며 관 뒤를 따라가는 것이 아닌가! 


그 여인을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은 울지말라 고 하시고는 그 관위에 손을 얹고 “ 청년아 일어나라” 하시자 죽은 시체가  벌떡 일어나 엄마의 품에 안겼다. 


그 엄마는 모든 것을 잃었다가 모든 것을 되 찾았다. 


그 과부의 기쁨은 아들의 죽음 을 통하여  다시 살아가는 모자간의 행복을 더 진하게 느낄수있었다. 

또 한 사건은  가버나움의 회당장이었던 야이로의 딸을  다시 살려주신 일이다. 


야이로는 신앙이 돈독하고 인품이 출중해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회당장의 자리에 있었다. 

사랑하는 딸이 깊은 병들자 백방으로 살리려고 노력했으나 아쉽게도 살리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님이 아이의 손을 잡고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자 떠났던 영이 돌아와  일어나 앉자 “먹을 것을 주라” 고 하시니 곧 정상으로 돌아왔다.


본 제목에서 다시 생각하는 바는 모든 사람이 한 번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 죽는 다는 것은 기정사실로 알고 있지만 죽음 다음의 세상이 또 있다는 사실을 다시 배우는 기회가 된다. 


사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 많지않다. 


믿지않는 사람이 많다 할지라도 있는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  바울 사도의  편지중에서  부활을  강하게 강조한 대목의 몇절을 인용한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었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 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 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 것이니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 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 하리라" 라고... 


죽음의 관문을 통하여 영원한 천국에 가는 것을 믿는 교인들은 이세상에서도 부활을 체험할수 있다. 

즉 자신의 끝없는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으며 예수님의 삶을 모방하는 사람에게는  살아서 부활을 체험할수 있다. 


이런  진리를 세계적인 문고 톨스토이는 부활이라는 책을 통하여 설명한다.


주인공인  네프리토후 가 세상의  못된 짓 만 골라하다가 어느 날  자기 때문에 한 평생을 망치고 감옥살이를 하게 되는 카츄사를 보게 되자 회개한다. 


추운 시베리야의 감옥에 간  카츄사를 붙잡고  용서를 빌고  카츄사도 결국 용서하므로 서로가 아픈 상처를 싸매며 같이 부활한다. 


진정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받아드리고 내 속에 예수님이 나를 주장할 때 나는 부활하는 것이고 또한 어느 날 죽은 후에도 다시 부활해서 영생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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