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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현순호 목사


용서에 관하여



참 기독교인 이 되는 마지막 턱 걸이는 원수를 용서하는 마음이다.  


상처가 얼마나 심하고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프면 스스로 생을 포기하게 될까!  


어떤 복수심은 원한을 품고  반격할 기회를 찾을까! 


내가  남에게 저지른 상처는  축소하거나  합리화 시키는 묘한 심리를 어떻게 봐야할까!


 베드로는 남들로 부터 상처를 많이 받은 사람이라  기회가 오면 그 원수들을 갚을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몇년 따라다니면서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 중의  한 가지는 내 원수들에게 복수할 마음이 조금씩 약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느 날 예수님을 향해 "선생님, 내 형제가 나에게 죄를 범했을 때 일곱번 까지 용서하면  될까요?"  라고 묻자 선생님은 7번의 7 번 이라도  용서하라 고 하시고는 이어서  한 비유를 들었다. 


일만 달란트의  빚을 갚지 못한 채무자를  채권자는 재판장에게 끌고갔다. 


재판장은 너와 처 자식을 팔아서라도 빚을 곧 갚으라고 하자 그는 울며 애원하기를 지금은 갚을 길이 없으나 곧 갚도록 노력하겠으니 좀 참아주십시요 하며 애걸을 했다. 


그것을 보고있던 채권자는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겨 그 엄청 난 돈을 모두 탕감해 주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생겼다. 


그 많은 탕감을 받은 사람이 법정에서 나와서는 자기에게 이백데나리온을  갚지 못한 사람을 만나자 내 돈 당장 갚으라고 호통을 친다. 


좀 기다려  달라고 애원하며 살려 달라고하는 그를 당장 갚으라며  감옥에 넣었다. 


그 소식을 들은 일만 달란트를 탕감해 준 주인이 잔인하고 악한 그 사람을 불러 전에 탕감해 준것은 무효로 한다. 


그리고 일만 탈란트를 다 갚기 전에는  감옥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감옥에 집어넣었다.(액수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이다) 


이 비유를 듣고있는 제자들에게 너희도 형제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면 조물주 께서도  너희 죄를 용서 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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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리는 오늘도 기독교의 핵심이지만 그대로 지키기는 일이 쉽지 않은 것 같다.


한국 기독교 역사에 길이 길이 남을 손양원 목사님,  그의두 아들을 죽인 공산당원을 용서하고 그 살인자를 자기 양 아들로 삼아 목사가 되게 하신 성자도 있지 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서울의 대형교회에 문제가 생겼다. 


교인이 증가하면서 새로 교회를 짓자는 목사님의 의견에 따르는 장로님이 있는가 하면 지금은 아니다 라고 반대하는 장로들도 있어 갈등이 점점 깊어졌다. 


몇년 지나는 동안에  목사님은 암에 걸려 입원을했고 그 병은 깊어만 갔다. 


그 때 제일 괴로워 하는 분들은 목사님의 의견에 반대 하신 장로들이었다. 


병실에 찾아가 울며 불며 미안하게 되었으니 이해를 하시고 속히 건강해져서 목사님의 뜻대로 합시다 라고 용서를 구했으나 그 용서는 받아 드리지 않았고  만날 때 마다  얼굴을 돌리고 얼마 후에는 병실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오죽했으면 용서를 못했을까! 하는 반문도 해 보지 만 잘 한 일은 아니다. 


용서는 피해자가 할수 있는 특권이다. 


그 특권을 사용하지 못하고 그대로 가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묘한 것은 큰 용서는 빠를수록 새 큰 역사가 생기는 일이다.


 대표적인 사람이 베드로다.


그렇게도 믿었던 수 제자인 베드로는 스승  예수님을 배신하고 심지어 저주까지 하고는 (마 27:74) 멀리 멀리 도망갔다. 


그런대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그 배신자를 찾아가 일절 그의 행한 일에 토를 달지 않고 용서를 해주며 새 용기를 불어 넣어 주어 더 큰일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셨고 베드로는 다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베드로의 새 인생은 본인 뿐 만 아니라 세계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이해와 관용 그리고 용서가 있는 곳에 평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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