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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 브완지’. 말라위 언어인 치체와어로 ‘요즘 어떠세요’라는 안부인사다.


기아대책 기아봉사단은 수도 릴롱궤와 살리마에 있는 어린이개발사업 CDP센터 인근의 마을을 찾을 때마다 같은 질문을 했다.


오늘 하루 굶지는 않았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또 말라리아는 안 걸렸는지…. 이 말 한마디에 모든 게 담겨 있다.


“엘리자, 물리 브완지?”


지난 2일 릴롱궤의 도시빈민촌으로 불리는 은구에니아 치무트마을에서 할머니, 동생 둘과 살고 있는 아홉 살 소녀 엘리자를 만났다.


봉사단의 방문에 쑥스러운 듯 소녀는 할머니 뒤로 숨었다.


마침 할머니는 손주들 아침 식사로 감자를 삶으려던 참이다.


어제 하루는 굶었다고 한다.


엘리자의 집은 두 평 정도 되는 낡은 진흙집.


밖은 해가 쨍쨍한데 집 안에 들어서니 온통 캄캄했다.

물론 전기는 들어오지 않는다.


밤새 내린 비로 집안 곳곳이 축축했다.
다 찢어진 젖은 옷가지며 낡은 이불이 벽 한쪽에 걸려 있다.


그 진흙 바닥에서 네 식구는 잠을 잤다고 한다.


오래전 엘리자의 아빠는 가출했고, 엄마도 재혼해 집을 나갔다.


할머니가 옥수수로 술을 만들어 팔면서 홀로 손주 셋을 키우고 있다.


그러나 이 마저도 옥수수값의 급등으로 포기한 상태다. 게다가 할머니는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에이즈 감염자다. “내가 어찌되기 전에 엘리자가 공부를 마쳐야 하는데….”
할머니는 봉사단 일행에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기아봉사단 민지희(33·여) 선교사는 “그래도 할머니께서 교육의 중요성을 알고 어렵지만 엘리자를 초등학교에 보내고 있다”며 “만약 이 아이가 CDP에 등록된다면 엘리자를 통해 이 가정이 먹을 것을 지원받고 교육·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엘리자와 같은 마을에 사는 아홉 살 소년 마조니아는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큰누나 에르베(15)는 말라리아에 걸려 축 늘어진 모습으로 지푸라기 위에 앉아 있었다.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작은누나 친신시(12)가 집안일을 거들고 있었다.


세 아이는 학교에 가지 않고 종일 같이 지낸다고 한다.


엄마는 “하루 한 끼 먹고 사는 게 힘든데 수업료 내면서 애들 셋을 어떻게 학교에 보내나”라며 하소연했다.


그나마 누나들은 2∼3년간 학교 문턱을 밟았지만 미숙아로 태어나 제대로 먹지 못해 몸이 약한 마조니아는 지금껏 동네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다.


학교가 어떻게 생겼는지, 글자를 읽고 쓸 줄도 모른다.


‘릴롱궤의 쓰레기마을’로 불리는 피네에는 100가정 정도가 산다.


지난해까지 이곳으로 릴롱궤의 모든 쓰레기가 모였지만 지금은 정부에서 쓰레기 하치를 금지시켜 오히려 마을 사람들은 사는 게 더 힘들어졌다.


기아봉사단 강원화(41) 선교사는 “쓰레기를 뒤져 인근 축사 등에서 버린 상한 닭들을 씻어 말려 삶아 먹거나 했는데 지금은 먹을 게 없다”며 “마을 추장이 우리에게 CDP센터를 운영할 수 있도록 교회를 설립해 아이들을 양육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아프리카 중남부에 있는 말라위는 2004년 국가가 식량재난을 선포했을 정도로 굶주림이 심각한 최빈국 중 한 곳이다.


이로 인해 아동은 유아기 때 충분한 영양공급을 받지 못해 뇌 발달이나 성장에 장애를 겪고 있고 국민의 평균 수명도 39세에 불과하다.


주식인 옥수수 가루는 매해 폭등해 지난해 50㎏ 한 포대에 5500원 하던 것이 지금은 5배나 뛰어 한 끼 먹는 것조차 버거운 상태다.


이처럼 먹고사는 문제에 시달리다 보니 아이들이 상급학교로 진급해 교육을 받는 것은 생각조차 못한다. 이는 결국 직장을 얻지 못하는 문제로까지 이어지면서 가난의 대물림은 되풀이되고 있다.
기아대책은 릴롱궤에서 동쪽으로 103㎞ 떨어진 살리마와 릴롱궤에 CDP센터를 세우고 600여 아동을 돌보고 있다.


CDP는 1대 1 결연을 통해 저개발국가 아동을 신앙적으로 양육하고 식량과 교육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방과후교실을 운영하고 식사를 제공한다.


특히 살리마 CDP센터에는 클리닉센터를 다음 달 중 오픈, 산전·후 산모와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의료 상담 서비스도 실시한다.


강 선교사는 “지금껏 CDP에 등록된 아이들은 말라리아나 다른 질병에 걸려 목숨을 잃은 경우가 단 한 명도 없다”며 “에이즈에 감염된 아이들도 정기적인 약물 치료와 영양식을 제공한 덕에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고 밝혔다.


모든 건 3만원으로 시작됐다.


 말라위에서 3만원의 기적이란, 아이들이 굶지 않고 고등학교까지 공부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나아가 결연된 아이를 통해 그 가정까지 살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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