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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주의가 만연한 요즘, 먼저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생각하는 한국교회의 전통을 하루속히 되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사진은 지난해 11월15일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나라와 민족을 위한 비상특별구국기도회.


구국기도회의 계절이다. 3월 새 봄을 맞아 나라와 민족을 위한 구국기도회가 줄을 잇고 있다.
각 교단과 교회의 3·1절 기념 기도회에 이어 8일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는 제44회 국가조찬기도회가 이명박 대통령 등 각계 인사 1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다.
또 15일엔 서울 안암동 고려대 교우회관에서 전국 30개 대학 출신 목회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전국 대학연합 조찬기도회’를 갖는다.
이밖에 전국 곳곳의 교회에서 구국기도회가 예정돼 있다.

◇ 한국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이자 나라를 살린 힘
구국기도의 전통은 멀리 한국 초대교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3년 원산에서는 선교사들의 구국기도 모임이 여러 달 계속됐다.
평양 장대현교회에선 길선주 목사를 중심으로 새벽기도회가 시작됐다.
1907년 서울 YMCA에선 월례강연회를 개최할 때마다 구국기도회를 겸했다.
기도하고 찬송가를 부른 뒤 애국가를 합창하며 폐회하는 모습을 본 일본 경찰조차 “듣기에도 눈물이 났다”고 고백할 정도였다.
3·1운동 때는 거리마다 기독교인들이 이런 격문을 붙였다.
“우리는 아침에 기도하고 낮에 기도하고 밤에 기도합시다. 주일에는 금식 기도합시다.
그리고 성경은 날마다 환독(環讀)합시다.
우리가 외치는 독립을 우리 대(代)는 못 얻어도 우리 자손 대에는 얻을 것입니다.”
1916년 YMCA에선 세계YMCA와 함께 만국학생기도일을 지켰다. 선교사들은 1920년을 ‘기도의 해’로 지정해 기도에 전력을 기울였다.
예장 총회는 1932년을 ‘기도년’으로 발표하고 가정기도, 매일기도, 밤기도의 실행을 촉구했다. 1940년 3월2일에는 ‘반전(反戰)기도일’을 지켰다.
한국전쟁 때 한국교회는 구국기도회로 긴 전쟁기간을 버텨냈다.
부산에 피란한 목사와 장로들은 한경직 목사가 조직한 대한기독교구국회를 거점으로 구국기도회를 열어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다.
이처럼 구국기도회란 이름의 기도회는 개교회 단위나 연합단위로 방방곡곡에서 열려 민중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었다.


◇ 구국기도 물결 새롭게 일으켜야
신학자와 목회자들은 한국교회가 이런 구국 기도의 전통을 살려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나라와 민족을 자신보다 앞세우고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 임하길 간구하는 구국기도회야말로 국운창달의 근본적인 동력이 될 것이란 믿음에서다.
또 개인 중심의 시대적 사조를 극복하고 공동체의 미래를 앞세우는 성숙한 사회 분위기 진작을 위해서도 구국기도회의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민경배 백석대 석좌교수는 “우리사회는 지금 너무나도 개인 중심적이다.
국가나 사회, 국민 전체를 생각하는 구석을 찾아보기 힘들다”면서 “먼저 나라와 그 운명을 생각하는 한국교회의 전통을 하루속히 부흥시켜야 할 때”라고 말했다.
박 명수 서울신대 교수는 “‘기도’는 한국교회를 상징하는 대표적 키워드 중 하나”라면서 “3·1절이나 6·25, 광복절과 같은 국가 절기나 굵직한 시국 사안이 있을 때 대형 체육관이나 기도원에서 나라를 위한 기도회들이 열리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억주 칼빈대 교수도 “구국기도는 누가 뭐라 해도 한국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이라며 “일부 종교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종교분리’나 ‘정교유착’과는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고 대조찬기도회 회장 한상림(고려대학교회) 목사는 “우리는 김정은 체제 출범이후 심각한 남북긴장과 좌우대립의 격랑을 겪고 있지만 국가안보 의식은 오히려 희석되어가는 것을 목도한다”며 “나라를 위한 한국교회의 구국기도 전통은 한국교회가 실제로, 그리고 언제나 개인보다는 우리 민족의 교회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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