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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4년 5월 부인 정양순 사모에게 보낸 옥중 편지. 평양신학교 시절 스승 주기철 목사의 부음 소식에 애통해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고난은 성공의 어머니가 아닐까요? 고난이 복을 받는 씨가 아닐까요? 고난 중에서 자기의 과거의 죄를 다 깨닫게 되어 사죄의 은혜도 받고 세상의 벗이 되어 죄중에 빠지는 자가 고난의 채찍을 통해 하나님에게 더욱 점점 가까이 나아가게 됩니다.(중략)”
신사참배 반대 운동을 하다 1940년부터 45년 광복때까지 옥고를 치른 산돌 손양원(1902∼1950) 목사는 1942년 광주 형무소에서 부인 정양순 사모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나환자의 상처를 빨아줄 정도로 사랑이 넘친 ‘사랑의 원자탄’, 두 아들을 잃게 한 공산당 원수를 양아들로 삼은 아버지, 6·25 때도 피란을 가지 않고 애양원에 남았다가 북한군에 처형 당한 목자(牧者).
고(故) 손양원 목사의 생전 사진과 옥중 편지를 모은 ‘사랑의 성자 손양원-순교자의 길’(바울서신)이 손 목사가 탄생한지 정확히 110주년이 되는 생일날인 3일 출간된다.
특별히 손 목사의 옥중 편지 전체가 원문 그대로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책에는 손 목사의 삶과 초기 한국교회의 모습을 담은 362장의 사진, 절절한 가족 사랑과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염려가 묻어나는 20여편의 옥중 편지가 그대로 담겼다. 옥중 편지에는 고난 중 감사하며 생활하는 그의 깊은 신앙을 엿볼 수 있다.
“당신은 나를 위해 조금도 염려하지 말아주소서. 한 덩어리 주먹밥 한잔의 소금 국물의 그 맛이야말로 신선의 요리요 천사의 떡맛 이외다.
공중의 새를 먹이시는 하나님, 들의 백합화를 곱게 입히시는 우리 아버지께서 나의 식량을 본래 적게했아오니 이 밥으로도 내게는 만족이요 나의 키를 작게 하심으로 옷과 이불은 나의 발등을 덮으니 이만하면 만족이 아닐까요?”(1942년 10월 광주 형무소).
1941년 몸져 누운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는 “여보시오. 나는 솔로몬의 부귀보다도 욥의 고난이 더욱 귀하고 솔로몬의 지혜 보다도 욥의 인내가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며 “안심과 희락은 만병의 보약이오니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시고 부디 병석을 떠나소서”라고 했다.
형무소에 갇힌 몸으로 오히려 부인을 걱정하고 만족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손 목사를 존경했던 백범 김구(1876∼1949) 선생과 함께 찍은 사진도 있다.
김구 선생은 암살되기 3개월 전인 1949년 3월26일 손 목사를 만나 “눈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걷지 말찌어다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욱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라는 한시를 친필로 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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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 9월28일 공산군의 총에 맞아 순교한 손 목사 시신 앞에 선 가족들.


두 사람의 나이 차는 26년이나 됐지만, 김구 선생은 손 목사의 신사참배 거부와 옥중 투쟁에 대한 행적을 듣고 구국 정신에 감동했고 자신이 설립한 학교 교장으로 손 목사를 초청하기도 했다.
교실 탁자 주변에 앉거나 선 채로 공부하고 있는 손 목사의 모교인 평양신학교 수업 광경도 눈길을 끈다. 평양신학교는 일제 시대 한국교회의 인재의 산실이었던 곳.
제자 손 목사를 특별히 아꼈으며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평양 형무소에서 고문을 받다 소천한 고 주기철(1897∼1944) 목사의 평양 산정현교회 시절과 장례식 장면도 있다.
손 목사의 ‘조선 민족의 근본 정신을 부활시키자’라는 제목의 설교문은 지금 읽어도 울림이 크다.
“조선의 그리스도인이여, 우리 민족을 살리자. 정계에 나간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를 이용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참다운 진실한 정치를 하자! 교육계에 나선 그리스도인들은 학생들에게 지식만 가르치지 말고, 지식의 근본인 여호와를 알려주자! 경제계에 나선 그리스도인들은 자기의 유익만을 구하지 말고, 정직한 상도(商道)를 세우고 만민에게 편의를 주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 의학 방면에서 활동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병자들의 약점을 악용해서 자기 치부(致富)에만 급급하지 말고, 의사이신 예수를 본받아 병으로 신음하는 이들을 고쳐주고, 위로해 육신의 병뿐 아니라 영혼의 병까지도 고쳐주자! 이럴 때에 비로소 기독교 정신으로 우리의 민족혼이 회복되어 행복한 국가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손 목사의 장녀 손동희(80·부산 대연중앙교회) 권사는 책머리 글에서 “아버지와 오빠들의 순교 신앙이 많은 분들에게 소개되길 원한다”고 했다. 월간목회 발행인 박종구 목사는 “빛바랜 사진과 절제된 언어의 행간에서 피어나는 순교 신앙의 향기가 영원을 바라보게 한다”고 서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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