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대 목사 이후 100년 만에 5대 목사 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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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1대 박태로 목사, 2대 박경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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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7일 목사 안수식을 마치고 감격스러워하는 3대 박창환 5대 박범 4대 박호진 목사(왼쪽부터).


지난 17일 서울 광장동 장신대 세계교회협력센터에서 열린 예장 통합 평북노회 임직식에는 언론사 카메라맨과 취재기자가 몰려들었다.
여느 교단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목사 안수식이었지만 한국교회 최초의 5대 목사가 탄생하는 역사적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유독 박범(32) 목사의 머리에 손을 얹은 두 목회자의 눈에선 눈물이 끊이지 않았다.
3대 목사인 조부 박창환(89) 목사, 4대 목사인 부친 박호진(57) 목사였다.
“사춘기 때 방황도 많이 했어요. 어느 날 밖에서 놀다 밤늦게 들어왔는데 아버지께서 매를 드시더니 사정없이 내리치셨어요. 심하게 반항하던 저를 안고 아버지께서 흐느끼시며 말씀하신 게 아직도 생생해요. ‘아들아, 우리 집엔 순교의 피가 흐른다. 그걸 잊지 말아라….’ 목회의 길을 놓고 고민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절대 목회자의 길을 걷지 않겠다’고 다짐했거든요.
그런데 순교자의 피가 흐른다는 그 말씀이 항공대에 진학하고 군대 가서도 마음속에 늘 맴돌았어요.”
사실 목회자의 길은 누가 시킨다고 무턱대고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아니다.
예수만 바라보고 묵묵히 걷는 희생과 헌신의 가시밭길이다. 5대 박 목사가 나온 이유는 있었다.
1대 목사는 중국에 파송된 한국교회 최초의 선교사며, 2대 목사는 순교자다. 3대 목사는 장신대 총장까지 지냈다.
이쯤 되면 목회자 세계에서 명문 중 명문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손자의 목사 가운을 매만지던 3대 할아버지 목사가 입을 열었다. “감격스러워 눈물만 나와요. 1913년 한국 최초의 중국선교사이셨던 할아버지 박태로 목사님과 황해도 서부교회를 지키다 공산군에 끌려가 1950년 순교하신 아버지 박경구 목사님, 저와 아들의 뒤를 이어 5대 목사가 나온 것은 오직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입니다.”
그는 1948년부터 87년까지 장신대 신약학 교수와 총장을 지내고 모스크바 장신대 학장으로 일한 원로학자다.
목회자 과잉 공급을 예측하고 80년대 장신대 신학과 정원을 절반으로 감축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4대 아버지 목사는 서울 명성교회에서 시무하다가 현재 한국교회순교자기념사업회에서 일하고 있다.
“아들이 인간의 인기에 영합하는 목회자가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목사가 됐으면 합니다.
인간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그런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그런 목회자가 됐으면 해요.”
1대 박태로 목사가 1912년 황해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으니 5대 목사는 꼭 100년 만에 완성됐다.
한국사회에서 자녀세대에 신앙조차 전수하기 어려운 환경과 남성 중심의 목회자 문화 속에선 5대째 목회자 명맥을 잇는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그렇다면 언더우드 선교사가 나온 미국 뉴브런스윅신학교를 올해 졸업할 예정인 박범 목사 가문의 저력은 어디에서 왔으며, 6대 목사는 가능할까.
“신앙의 좋은 전통을 전수해준 가정과 철저한 새벽제단의 중요성을 가르쳐주신 명성교회의 영향이 컸습니다. 6대 목사요? 하하.
이제 17개월 된 딸이 하나가 있어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저에게 목회자의 길을 걸으라고 강요하지 않으셨던 것처럼 저 역시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그런데 자녀는 더 낳아야 하지 않겠어요?” 빙그레 웃는 5대 목사의 입가에 답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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