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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세 목사
East Bay 복음선교회 회장 대표
시온 장로교회 음악 목사(D.C.M)
전 SF 기독대대학교 대학원 교수(D.Min, Th.D)

… “나는 너희 하나님이라”는 이 말씀 한마디가 예배자들에게 예배의 표준과 척도를 제시하는 신비스런 말씀이라고 Martin Luther는 말한다 …”


종교개혁은 다른 면으로 해석하라면, 예배의 혁명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종교개혁자들(Martin Luther or John Calvin)은 교회예배의 역사적 발전의 진가를 깨닫고 교회를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으려는 노력으로 예배를 갱신하는 혁명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개혁자들은 1)교회의 예배와 2)생활의 예배에 신학적인 기초를 쌓아 올리게 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말한다면 개혁자들의 으뜸가는 업적 중에 하나가 16세기에 혼탁해진 교리와 예배에 대해서 올바른 통찰력을 갖게 해준 것이라 하겠습니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라” 이 말씀은 Luther에게는 모든 사람이 예배에서 한나님께 속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고 믿었습니다.
“너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하신 제1계명의 범주 안에서 Luther는 그리스도 교회의 총합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제1계명의 예배에 대한 Luther 사상의 근거였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만이 제1계명을 성취할 수 있으며 불신앙은 곧 우상숭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참 예배자냐? 우상숭배자냐? 의 둘 중에 하나에 속해 있습니다.
Martin Luther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은 생동적(Dynamic)이었고 또한 믿음으로만 들을 수 있는 하나님의 산 음성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배를 좌우하는 것은 더 이상 Latin적인 중세기의 전통을 지키고 성례전을 행하는 것이 아니고, 전통과 성례전을 말씀과 성례전으로 새로운 내용과 빛깔로 도전하여 혁명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본래 성례전 적인 것을 회복하는 것은 ‘말씀’인 것입니다.
성례전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만 거룩해지고 또한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말씀이 없는 성례전을 행할 수가 있겠습니까?
말씀은 주님이 제정하시고 구원의 은총을 전달해주는 성례전을 바르게 해석하고 행할 수 있는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Luther에게는 ‘주의 만찬’은 생명력을 얻으며 ‘말씀을 행동화’(word enacted)하고 ‘말씀이 구체화’(an embodiment of world)된 간략하게 요약된 복음(Gospel in a brief summery)이 된 것입니다.
성례전에 관한 Luther의 본직적인 개념은 ‘사귐’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 사귐의 진의를 벗으면 미신이 됩니다.
그러므로 성만찬은 예물도 희생의 제물도 아닙니다.
그것은 개개인의 영혼이 예배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에 의해 직접적인 만남의 사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 구조적인 개념은 예배에 있어서 말씀이 두 가지 기능을 이루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 하나는 살아계셔서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으로써,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영광과 은혜가 예배자들에게 나타나는 것이고, 그 둘째는 주님께서 그의 말씀으로 직접 예배자들의 영혼에 임재하셔서 예배 공동체의 신앙을 북돋우어 예배자를 통해 영광 받으심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자들은 말씀을 통하여 성령님과 교제하며 살고 주님께서는 예배자들의 심령에 성령의 감동으로 직접적 계시를 부여하십니다.
이 계시는 주님에 대한 생각이나 기억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과의 만남과 사귐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신앙의 대상으로 뿐 만 아니라 우리 속에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며 사색과 명상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경험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능력 있게 나타나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Martin Luther는 종교개혁의 내용을 예배의 갱신으로 또는 예배의 개혁으로 이루어 나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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