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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 목사>

 

미 프로농구 NBA 금년 시즌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구단 창단 이래 달라스 매브릭스가 처음으로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사실 금년에도 지난해 챔피언인 LA 레이커스가 차지하려니 하고 LA 사람들은 느긋하게 경기를 지켜봤다. 물론 보스톤 셀틱스가 걸리기도 하고, 기를 쓰고 챔피언이 되겠다고 벼르던 마이애미 히트, 초반 서부조에서 강세를 보였던 샌안토니오 스퍼스도 사실 무시못할 상대였다.
아니나 다를까? 플레이오프에 겨우 진출한 레이커스는 뉴 올리언스의 ‘22살짜리 젊은 피’ 크리스 폴에게 쩔쩔 매다가 매브릭스에게는 한 승도 건지지 못하고 그냥 뒤로 자빠지고 말았다.
매브릭스도 웨스트브룩과 케빈 듀란트가 있는 오클라호마 시티의 썬더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다 결국은 결승전에 진출하여 동부조 컨퍼런스 우승자인 마이애미 히트와 붙게 되었다.
동부조 결승전에서 마이애미가 시카고 불스와 승부를 벌일 때 나는 불스를 응원했다. 내가 과거 30년 전 시카고에 1년 살았던 추억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르브론 제임스가 미워서였다.
결국 히트가 동부조 우승팀이 되어 서부조 정상에 오른 매브릭스와 결승전을 벌일 때도 나는 당연히 매브릭스를 응원했다. 왜? 매브릭스가 서부조에다 LA와 가까우니까? 아니다. 르브론 제임스가 미워서였다.
결국 내가 미워하던 르브론 제임스의 마이애미 히트는 시리즈 전적 4승 2패로 패배의 쓴 잔을 마시고 말았다. 매브릭스의 ‘독일병정’ 더크 노비츠키는 언제 봐도 믿음이 간다. 프리드로에서 실수하는 걸 별로 못 봤다.
경기가 끝나서 아나운서가 마이크를 들이대면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우선 치고 나오는 믿음 좋은 제이슨 테리, 큰 형님 격인 제이슨 키드, 그리고 숀 매리언까지 매브릭스는 정말 마지막 순간까지 멋진 플레이를 팬들에게 선사했다.
NBA가 끝나는 날, 이곳 LA 한국일보 스포츠 판의 헤드라인 제목은 “농구는 3명이서 하는게 아니야”였다. 당연히 클리블랜드에 있던 르브론 제임스를 불러들여 드웨인 웨이드, 크리스 바시와 더불어 철통같은 ‘수퍼스타 3총사’를 구축함으로 이번 시즌 챔피언 트로피를 거머쥐겠다는 마이애미 히트를 비꼬는 말이었다. 르브론이 가세했으니 당연히 무적함대처럼 NBA를 집어삼킬 것으로 예상했으나 결승전에서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만 것이다.
나는 왜 주는 것도 없이 르브론 제임스를 미워했는가?
애걸복걸하며 클리블랜드가 그의 바지 가랭이를 붙잡고 가지 말라고 빌었건만 그는 돈과 챔피언에 대한 욕망 때문에 자신을 키워준 클리블랜드를 미련없이 포기하고 마이애미 행을 결행한 것이다.
그것이 비정한 프로 스포츠의 세계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저런 의리 없는 친구들이 아무리 좋은 플레이를 선사한들 무슨 감동이 있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삐딱선을 타고 마이애미와 르브론을 지켜본 것이다. 
사실 클리블랜드의 아픔이 얼마나 컸으면 이번 매브릭스의 우승을 놓고 달라스보다 더 기뻐했다고 한다. “르브론의 고통은 곧 우리의 기쁨”이라고 외쳤다니 . . . . 클리블랜드 캐발리어스 구단주는 “클리블랜드가 우승하기 전까지는 르브론에게 챔피언 반지는 없을 것”이라며 저주를 퍼부어 왔다고 한다.
심지어 오하이오 주지사까지 나서서 매브릭스 선수들에게 명예 시민권을 주겠다는 성명을 발표하면서까지 르브론의 패배를 즐거워 했다고 한다.  
사실 파이널 시리즈에서 르브론은 형편없는 성적을 보여 주었다. 그래서 마이애미의 패배는 결국 르브론의 예상치 못한 득점력 때문이었다는 뼈아픈 분석도 나오고 있다. 르브론만 오면 챔피언은 따 논 당상이라고 믿었던 마이애미의 희망은 ‘깨몽’으로 끝난 것이다.
그런데 챔피언을 결정짓는 마지막 경기에서 매브릭스가 승리의 팡파레를 울리는 순간 어깨가 축 쳐져서 경기장에서 퇴장하는 르브론을 보니까 왠지 처량하게 느껴 지는게 아닌가? 내가 미워해서 챔피언 반지를 놓쳤나? 갑자기 회개하는 마음이 발동한 것이다.
그냥 좋은 경기를 보면서 잘한다 잘해, 어느 편이던 잘하는 편에 박수 치고 끝나면 될 것을 목사가 되어 가지고 NBA 지켜보면서 집요하게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었다니  . . . .결국 쓰잘데없는 편견과 오해의 노예가 되어 꽤나 좋은 농구 선수 하나를 마음속으로 미워해 온 것이 스스로에게 무안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날 저녁 우리 신문사 이메일로 뉴욕의 장재웅 목사님이 칼럼 하나를 보내주셨다. 그 칼럼을 읽는 중에 요한 웨슬리 목사님의 말씀이 소개되고 있었다.
“본질에는 일치를, 비 본질에는 관용을, 그리고 모든 일에는 사랑을. . . .”
이 말씀이 돌맹이 하나가 잔잔한 호수 한복판에 던져 진 것처럼 파문이 되어 마음을 흔들었다. 오래전 신학교 수업시간에 분명 여러 번 들었을 그분의 말씀이었건만 그날에는 분명 내게 하는 말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래, 지난 몇 개월 NBA를 즐기면서 나는 너무 비본질적인 것에 미움을 생산하고 있었다. 웨슬리 목사님은 어떻게 이리 내 마음을 꿰뚫고 있었을꼬?
우리는 비본질적인 것과 씨름하느라 때로는 핏대를 올리고 갈라서고 훼방하고 질투하고 미워하며 살아간다. 본질에서 벗어난 세상사엔 허허 웃어가며 관용을 베풀며 살자.
웨슬리 목사님은 참으로 지당도사다. 그분의 말씀이 백번 옳은 것 같다.
<크리스천뉴스위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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