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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서 목사

<방주선교교회>

 

제가 한국을 떠나기 전인 30년 전 만 해도, 결혼한 여자 분들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쉽지가 않았습니다.
자식들의 이름을 갖고, 철수 엄마라고 부르거나, 영희 할머니라고 하면 누구도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이름을 갖고 있지 않고 태어난 듯 살아갔고, 이름을 아무도 불러주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또한 고향이 어디냐에 따라 공주댁, 춘천댁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목회자들도 대개 50대 이상인 분들은 남편 이름 뒤에 사모만 붙여 부르는 방법이 아직도 보편적입니다.
아내의 경우는 박재희사모란 이름 대신, 박동서 목사 사모라고만 알고 이름을 물어보지도 않는 모임이 많습니다.
한국에서 안식월을 보내면서 20일 정도를 집회와 여행을 다녔고, 열흘 정도를 기도원에서 보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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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도 하지 않은 만남들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부모님과도 일정의 틈새마다 일주일 정도 함께 보내며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은퇴하신 분들이 모여 사시는 실버 아파트 식당에서 식사할 기회가 많았는데, 아버님이 저는 입주자 친구 분들에게 “제 큰 아들 박동서 목사”라고 소개하시지만, 아내는 영락없이 그냥 며느리라고만 소개하십니다.
그게 저도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유교적인 문화와 관습의 영향인 듯합니다.
미국에서 동일한 상황이라면, 거의 예외 없이 아내의 First Name인 재희를 반드시 포함해서 소개했을 것입니다.
  한국은 결혼을 해도 미국과 달리 여자가 결혼 전 갖고 있던 부모의 성을 그대로 간직하기 때문에, 단체 모임에 가도 부부가 같이 있지 않으면, 이름만으로는 부부 사이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여성들이 민주화된 사회에서 고등 교육도 받고, 직장 생활에서도 남자 사원들과 대등하게 경쟁하며,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이 많이 개선된 반면, 이혼율도 급증하고, 부적절한 혼외 이성관계로 가정이 깨어지는 사례도 많음을 들었습니다.
관광지에는 예외 없이 불륜커플들만을 위한 소위 러브호텔들이 어찌나 많은지 숙소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기도원으로 가는 길에도 도착할 때까지 강가와 계곡에는 모두 러브호텔이나 펜션 들이 가득 들어서 있었습니다.
주거지로 인기가 많은 경기도 분당, 수지, 용인, 판교 지역이면 엄청나게 인구도 많고 신도시들로 개발된 지역들인데, 이 지역들에서 집회를 인도할 때, 숙소는 언제나 분당에 있는 노인 아파트 빈 방을 외부 고객들에게 임대해 주는 숙소 한 곳이었습니다.
이유는 이 지역의 다른 모든 호텔들이 모두 러브호텔들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발전한 모습 뒤에 숨어 있는 가슴 아픈 또 다른 현실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아내는 조금 지루하고 답답한 것 같아도, 공기 좋고 물 좋고 삶의 여유가 있는 새크라멘토가 이제는 고향같이 편안하고 가장 살기 좋은 곳 같다고 합니다.
한국에 나오기만 하면, 머리가 아프다고 합니다. 영락없는 새크라멘토 댁이 다 된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방주의 가족들이 있는 새크라멘토를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집 떠난 지 몇 달 된 것 같습니다.
이제 내주에 귀국합니다. 저도 몹시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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