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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상기도(임재기도)에 대한 한국교계의 견해는 찬반 양론으로 갈라진다. 예장통합,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예장백석 등은 수용적이지만 예장합동, 합신, 고신 등은 아직도 비판적이다.



관상기도나 향심기도와 같은 침묵기도가 일부 개신교인들 사이에서 영성을 깨우는 기도 방법으로 호응을 얻고 있다. 


이름은 달라도 내용적으로 유사한 이 기도들은 기도자의 필요만을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내려놓음’을 지향하는 기도다. 


초기 기독교에서부터 이어져 온 관상기도는 개신교인들에게도 친숙한 헨리 나우웬이나 토머스 머튼과 같은 가톨릭 신학자들, 관상기도를 연구했던 개신교 신학자 본회퍼 등에 의해 현대에 이르러 재해석돼 왔다. 하지만 개신교 일부에서는 “신비주의와 맞닿아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들 기도법의 특징은 ‘비우고 버리며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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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성훈련과 더불어 관상·향심기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한 성도가 성경과 촛불을 두고 묵상을 준비하는 모습. 



‘복을 받게 해 주세요’ ‘사업에 성공하게 해 주세요’ ‘건강을 주세요’와 같은 이른바 ‘주세요 기도’와는 성격이 다르다. 


최근 향심기도 가이드북인 ‘더 깊은 사귐’을 펴낸 유해룡 장로회신학대(영성신학) 교수는 “관상기도나 향심기도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침묵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며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머무르고 하나님께 집중하는 훈련”이라면서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감을 위해 필요한 기도로 사실 우리가 하는 모든 기도를 관상적 기도라 볼 수 있다”고 규정했다.


관상기도를 가톨릭교회의 전통으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의견도 있다. 


‘관상기도 전도사’로 자처하는 이민재(서울 은명교회) 목사는 “관상기도는 가톨릭교회의 기도이고 통성기도는 개신교회의 기도라는 식의 구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서 “관상기도는 초기 기독교의 소중한 유산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도라는 본래 취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성경에도 관상기도를 설명하는 여러 구절들이 나온다. 이 목사는 마태복음 6장 6절의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는 ‘침묵’을, 마태복음 5장 3절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비움을 언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관상기도는 신비주의적이고 가톨릭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선을 긋는 교단들도 있다. 

호흡법을 강조하거나 예수 그리스도를 주문처럼 외게 하는 일부 관상기도법이 논란을 확대시켰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합동 총회는 2011년 9월 열린 제96회 정기총회에서 관상기도가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다며 교단 산하 교회 교인들의 참여를 금하는 ‘참여금지’ 결의를 했다. 예장합신 총회도 같은 해 열린 총회에서 참여금지를 결정했다. 


예장합동 총회 신학부는 당시 연구보고서에서 “관상기도는 신비주의와 종교다원주의, 이교적 영향이 혼합돼 있어 복음의 순수성을 해친다”면서 “성경과 개혁주의 신학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연구에 참여했던 총신대 교수 김남준(안양 열린교회) 목사는 “복음주의 안에서도 학자들이나 목회자들마다 관상기도에 대해 다른 판단을 하고 있다”면서 “분명한 것은 관상기도가 역사적으로나 신학적으로 기독교 신비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김 목사는 “역사적으로 볼 때 기독교 신비주의가 심화되면 이교적 신비주의와 유사점이 많아지고 종교다원주의에도 쉽게 노출된다”며 무비판적 수용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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