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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합조개를 캐서 보리와 바꿔 살아가던 야월도에 1908년 교회가 설립됐다. 그리고 6·24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0월 교인 65명 전원이 학살 당했다. 지난달 30일 촬영한 보리밭 너머 야월교회 순교자기념관(왼쪽)과 야월교회 예배당 풍경.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마18:15~17)


전남 영광군 순교성지 야월교회, 염산교회, 법성교회를 돌며 줄곧 이 말씀이 맴돌았다. 

이곳 교회 형제들은 이 말씀을 안고 사는 이들이었다. 


서로가 깊은 침묵으로 속정을 다지고 중보기도로 형제를 끌어안고 있었다. 


영광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6.25전쟁을 거치며 형제간의 대립과 폭력이 난무했던 땅이다. 

그 처참한 현실에서도 그들은 신앙을 지켰고, 공동체의 삶을 유지해왔다.


지난 주일, 연둣빛 잎들이 영광군 염산면 야월교회로 향하는 77번 국도변을 덮었다. 

염산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오지에 속했다. 


영광읍 매일시장까지 25㎞. 염산 주민 대개는 특산물인 백합조개를 캐서 근근이 생계를 이었다. 

머리에 백합조개 바구니를 이거나 지게에 지고 깊은 새벽에 출발해 그 먼 길을 걸어 매일시장으로 갔던 것이다.


그들은 해방이 됐는지, 전쟁이 터졌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읍내 시장에 백합이나 소금 팔러 간 이들이 신문쪼가리나 버려진 잡지라도 가져오면 그게 바깥세상 소식이었다.



서해 갯벌 섬, 복음과 참극


그런 오지에 1908년 야월교회가 설립됐다. 

야월리는 지금은 뭍이다. 


한데 교회 설립 당시만 해도 야월도라는 섬이었다.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 유진 벨(1868~1925)은 1897년 개항도시 목포에 목포선교부를 설립하고 전남 서남해안 선교에 주력했다.


유진 벨은 1908년 야월도에 배를 정박하고 복음을 전했다. 100여호가 사는 섬마을이었다. 


앞서 유진 벨은 영광 지역 첫 교회 백수교회(1903)를 시작으로 묘량교회(1904) 영광대교회(1905) 등을 세웠다.


물론 조직교회는 아니었다. 그 당시 문맹률이 높았고 농촌계몽운동도 미치지 않았던 곳이어서 복음 전파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초가집에 십자가를 세웠다. 

그리고 주민은 당집 앞에서 주문을 외듯 십자가 앞에서 기도를 드렸다. 

복음이 들어가자 문해력이 높아졌고, 조직교회가 됐다. 


교인들은 농촌계몽운동과 애국운동, 신앙교육을 전개했다. 

인근 염산교회(1939) 분립 등 지역복음화에도 힘썼다. 


하지만 신사참배 강요와 이에 대한 항거로 조양현 영수와 최판섭 집사가 구속됐고 교회가 폐쇄됐다. 


그들은 교인 가정에 모여 기도를 이어갔다. 

해방이 되자 교회는 곧바로 재건됐다.


지금의 야월교회는 1975년 적벽돌로 설립된 본당과 2009년 완공된 ‘야월교회 기독교인 순교자기념관’ 및 부설 교육관 등으로 구성돼 여느 시골교회와 달리 꽤 큰 규모를 자랑한다. 기념관 1층에는 전시실과 추모관, 2층은 예배실 등을 갖췄다.  기념관 밖 십자가 조각공원에는 예수 수난을 상징하는 예술작품과 현대적 감각의 종탑이 들어서 있다. 


2층 규모의 교육관은 80~180명의 집회와 숙박이 가능하다.


지난달 30일 주일 예배에 70여명의 교인이 예배 30분 전부터 ‘우리를 죄에서 구하시려’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등을 찬송하며 말씀 들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교회 문 밖만 나서도 사람 하나 볼 수 없는데 교회 안은 후끈 달아올랐다.

심재태 목사의 인도로 예배가 시작됐다. 


최종한(76) 원로장로의 기도가 이어졌다.


“하나님 아버지 109년 전 섬마을에 믿음의 뿌리를 내리게 하여 주신 것 감사합니다. 은혜가운데 믿음을 지켜온 우리는 67년 전 65명의 형제를 잃었습니다. 죄 없이 죽어간 순교자들의 피가 헛되지 않게 신앙의 유산을 지키게 하여 주옵소서….”


최 장로는 이곳 토박이다. 

1950년 10월을 전후해 ‘제암리교회 학살’보다 더한 ‘이념갈등의 참사’를 지켜봐야 했다. 


열 살 소년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는 기도에서도 가해자가 누구인지 말하지 않았다. 

이곳 교인도, 주민도 마찬가지다. 


가해자의 후손과 같이 살기 때문이다.

1950년 6·25전쟁 발발 사흘 전, 미상의 인민군이 해안에 나타났다. 


자생 공산당과 빨치산 등이 연계된 출몰이었다. 

경찰이 이들을 교전 끝에 물리쳤다. 


그 중 낙오자 한 명이 나무꾼에게 발각돼 권유 끝에 자수했다. 

나무꾼은 교인 정문성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자수자를 사살해 버렸다.

그리고 전쟁이 터졌고, 7월 말 인민군이 영광지역을 점령했다. 


자생 공산당원들은 야월교회를 인민의 원수로 지목하고 가혹한 박해를 시작했다. 

다행히 9.28 수복과 함께 교회도 자유를 되찾았다. 


야월교회 교인 등 기독교인들은 대대적인 국군 환영행사를 준비했다. 

영광은 광주에서 활동하던 사회주의자 박헌영과 그 수하 조선공산당 조직책 김삼룡 등의 영향으로 암약하는 고정간첩이 많았다. 


따라서 수복이 됐다 해도 잔당들은 남아 있었다.

잔당들은 국군 환영행사에 나선 기독교인 학살을 자행했다. 


정문성과 일가족, 영수 김성종과 조양현 일가족, 집사 최판섭과 일가족 등 교인 65명이었다. 

주민 80여명도 희생됐다. 


간척지 수문에 돌을 매달아 죽이기도 했고, 갯벌과 산에 구덩이를 파고도 죽였다. 

야월교회에서 6㎞ 떨어진 염산교회 교인 77명도 같은 방법으로 죽임을 당했다.


최판섭 집사의 부인 유영섭 집사는 마지막 소원이라며 두 가지를 청했다. 

살인자를 향해 “선생님도 예수를 믿으세요. 그리고 찬송 하나 부르고 죽겠습니다”라고 했다. 

‘하늘 가는 밝은 길’이었다. 


유 집사는 칼에 찔려 죽었고 시신은 바다에 버려졌다. 

그리고 끝내 시신을 찾지 못했고, 교회는 불탔다.

전쟁이 끝났다. 


사람들은 누구도 그 참사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교회’라는 말도 꺼내지 않았다. 


원인을 규명하자면 또 누군가에 의해 살육을 당하는 매카시즘 광풍의 시대였다. 


침묵 또 침묵. 이곳에서 60년대 소년기를 보낸 소설가 송영(1940~2016)은 훗날 작품 ‘투계’를 통해서 고립된 이들이 벌이는 냉혹한 배제를 그려냈다. 


상처와 무관하지 않다. 닭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생명에 대한 기아 방치와 구타, 학대 등을 벌이는 인간의 잔혹성은 짐승의 시대와 다를 바 없다.



'교회' 는 '죽음' 을 의미했다


야월교회 순교 이후 ‘교회’란 단어는 주민들에게 ‘죽음’을 의미했다. 

야월리 주민은 침묵하며 백합조개만 캤다.


 세월이 흐르고 가해자와 피해자 선대가 유명을 달리했다. 염산교회 청년들이 들어와 야월교회 주일학교를 회복시켰다. 


그리고 75년 번듯한 예배당도 지었다.

한국교회가 순교자 성지를 조성해 나갈 때 야월교회와 염산교회, 법성교회 등은 깊은 상처의 후유증으로 주저했다. 


한 교회 안에 가해와 피해자의 후손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형제들 아닙니까. 쉽지 않았죠. 이제는 형제를 얻었다고 봅니다.”


최 장로가 순교자기념관을 방문한 인원을 자신의 수첩에 옮겨 적으며 이같이 말했다. 

올 1월 1일~4월 30일까지 방문자가 4227명이었다.


2000년대 초반, 설도포구 수문 앞에서 염산교회 전경 사진을 찍을 때 한 할머니의 증언이 새삼 기억났다. 


“나는 펄 고기 안 먹어요. 6.25사변 때 총칼에 찔린 시신이 이 수문 앞에 버려졌어. 한데 펄 고기가 시신을 파먹는 걸 봤어.”


그들은 단지 예수를 믿었다. 


이웃과 민족과 나라를 사랑하라고 배웠다. 

그들은 자유를 위해 예수의 붉은 피가 됐다. 


야월교회, 염산교회, 법성교회 앞 노을은 여전히 서해 칠산바다로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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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산 교회


◈ 순례길 돌며 함께 볼거리

전라남도 기독교 순례지에 대한 관광은 전남도청 관광과(061-286-5243)로 문의하면 된다.


◈ 백수해안도로 

백수읍 길용리에서 백암리까지 16.8㎞의 아름다운 해안길. 

기암괴석, 광활한 갯벌, 석양 등이 일품이다. 서해안 대표적 드라이브 코스. 영광군 백수읍 해안로 957.


◈ 천일염전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인 서해안 갯벌의 대표적 소금 생산지로 염전체험을 할 수 있다. 염산교회에서 야월교회 가는 길옆에 체험관이 있다. 영광군 염산면 칠산로 9길 185-86.


◈ 불갑산 상사화 

9월이 되면 산 계곡에 온통 붉은 상사화가 핀다. 꽃무릇이라고도 불리는데 전국 최대의 군락지다. 10월 상사화 축제가 열린다. 

영광군 불갑면 불갑사로 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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