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 공부에 나이가 있나요/ 공부하기 딱 좋은 나인데.” 

인기 트로트 가요 ‘내 나이가 어때서’의 핵심어인 사랑 대신에 공부를 넣어 개사한 것이다. 

이 노래처럼 사는 ‘만학청춘’ 3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미수(米壽)를 바라보는 할머니가 모국어를 처음 배우며 신나한다. 

희수(喜壽)에 가까운 노인은 도서관을 오가며 ‘더 나은 사람’을 꿈꾼다. 


환갑을 훌쩍 넘긴 신사는 사이버대 강의를 수강하며 평화로운 저녁을 보낸다. 

이들은 지식을 더하며, 기쁨을 더한다. 


배움은 늘 새롭다. 


봄에 피어나는 하얀 목련처럼. 

만학은 청춘이다.




80대 

서울 " 민들레한글교실 " 

권춘섬 할머니


만학청춘_권춘섬.JPG



“곡절 많은 내 인생, 내 손으로 써보고 싶어”… 머리 흰 할머니 10여명 연필로 단어 꾹꾹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성현로 한 임대아파트의 관리사무소 3층.

 “기역, 니은, 디귿, 리을, 미음, 비읍….” 


장익성 대한성공회 봉천동나눔의집 사무국장이 한 할머니에게 한글 자음을 읽어주고 있었다. 

머리 허연 할머니 10여명이 책상에 앉아 자음이나 모음, 한글 단어를 각각 연필로 꾹꾹 썼다. 

평균 연령 80세인 ‘민들레한글교실’ 풍경이다. 


권춘섬(86)씨는 연필을 꽉 쥐고 ‘미꾸라지’를 따라 쓰고 있었다. 


진분홍색 점퍼를 입은 할머니는 나이에 비해 젊어 보였다. “또박또박 잘 쓰시네요”라고 말을 건넸다. 


권씨는 “여기 와서 많이 배워서 그래. 이렇게 매일 배우니까 얼마나 좋아?”라며 환하게 웃었다. 

1930년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8남매의 넷째였다. 


“소학교도 못 갔어. 제일 큰오빠 딱 하나만 학교에 갔지.”


그는 글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 


“그래도 하나님이 우리 8남매를 모두 남한으로 불러주셨지.” 


할머니의 남편은 6·25전쟁 때 지뢰를 잘못 밟아 팔을 잃어버렸다. 

“내가 돈을 벌어야 했지. ‘양공주’나 미군들 빨래해 주면서 억척스럽게 살았지. 새끼들 안 굶기려고….” 


권씨는 경기도 파주 미군 부대 근처에 오랫동안 살았다. 


“세 자식들 얘기하려면 너무 길어져.”

 그가 다시 글을 썼다. 


“‘가’자를 잘못 쓰면 ‘거’자가 되어 버리더라고.” 권씨는 맨 아랫단의 ‘토끼’를 따라 쓰며 말했다.

할머니에게 한글을 다 배우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곡절 많은 내 인생을 쭉 한번 써보고 싶은데 될 수 있을까나?” 


옆에 있던 장 사무국장이 “당연히 하실 수 있죠”라고 맞장구쳤다. 

할머니는 “호, 호”하고 웃었다. 


수업을 마친 뒤 할머니를 현관까지 배웅했다. 


“요즘 난 천국 가는 날까지 재미있게 배우고 건강하게 지내도록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어.”


할머니의 키는 1m40㎝도 안 돼 보였다. 

지팡이를 쥐고 조심조심 걸어갔다.





70대 

" 올A 장학생 " 

이용수 장로의 도서관 사랑


만학청춘_이용수장로.JPG


“취업보다 더 좋은 아버지·이웃 되려고 공부”… 심리상담대학원 석사과정 3학기 재학 중



같은 날 오후 경기도 군포 한세대 교정. 


착한 ‘교회 오빠’나 ‘교회 누나’ 이미지를 가진 활기찬 청년들이 바삐 오가고 있었다. 

그 사이로 나타난 이용수(75) 서울 순복음강남교회 장로는 학생들의 할아버지뻘로 보였다.

이 장로는 검정색 백팩을 매고 있었다. 


가방 안에는 이날 수강할 발달심리학 전공서적과 여러 프린트물이 들어 있었다.

그는 한세대 심리상담대학원 석사과정 3학기에 재학 중이다. 


그가 출석하는 교회 변학환 한세대 석좌교수의 권유였다. 


“대학원에 입학할 때 아내가 많이 말렸어요. ‘언제 세상 떠날지 모르는 나이에 무슨 대학원이냐? 허영 아니냐’며. 공부하다가 하늘나라 가면 그 이상의 웰다잉(Well-dying)이 있겠냐고 아내를 겨우 설득했어요. 손주들도 날 존경할거라고 우겼죠.”


현대건설 등에서 근무한 그는 관련 업체를 세웠지만 1998년 외환위기 때 부도가 났다. 


“지금도 그때 진 빚을 조금씩 갚아가고 있어요. 아내가 걱정할 만도 했죠. 다행히 하나님 안에서 만난 지인이 후원을 해주기로 했어요.” 


그는 열심히 공부했다. 지난해 그는 전 과목에서 A학점 이상을 받았고 장학생이 됐다.


“새로운 곳에 취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니에요. 더 나은 아버지, 할아버지, 남편, 친구, 이웃이 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어요. 

젊은 친구들과 친해지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이 장로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 자택 인근 공원에서 우연히 만난 교회 집사에게 상담을 해주기도 한다. 


“아들이 자살 시도를 두 번이나 했다고 하더군요. 그분은 사역에 몰두한 나머지 가족생활과의 균형을 잡지 못하고 있었어요.”


한참 대화를 나눈 후 이 장로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자랑스러운 듯 한 건물을 가리켰다. 

“제가 학교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입니다.” 

만학도가 가리킨 곳은 도서관이었다.




60대 

퇴직공무원 김용철씨 

" 행복한 이중 생활 "


만학청춘_김용철.JPG


“자격증 있어도 고령자 꺼리는 현실에 재도전”… 낮에는 직장·밤에는 사이버대 ‘주경야독’

김용철(65)씨와는 이날 늦은 밤 전화로 대화를 나눠야 했다. 


“제가 낮에는 직장에서 일을 합니다. 저녁에는 사이버대학 강의를 수강해야 합니다.”

그는 평일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물류 관련 업체에서 전산 업무를 처리한다. 


귀가 후 식사를 한 뒤 숭실사이버대 청소년코칭상담학과 강의를 수강한다. 

강좌를 듣고 나면 대개 밤 11시가 넘는다.


“35년 동안 공무원으로 일하다 2009년 퇴직했어요. 퇴직 전에 아무 준비를 안 했어요. 

그 정도 일했으면 실컷 놀아야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반년쯤 지난 어느 날 아침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오늘 할 일이 뭐지?’” 


2010년 그는 사이버대학 사회복지학과에 등록했고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새로운 일을 찾아보러 다녔다.


“제 이력서를 들고 사회복지법인 등을 찾아 다녔어요. 

그런데 담당자들이 ‘우리 직원의 정년이 60세다. 안타깝지만 나이가 많다’고 하더군요. 

심지어 노인단체에서도 젊은 사람을 선호하더군요. 

지금은 전공과는 관련 없는 업무를 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2015년 청소년 관련 학과에 다시 편입했다. 


“한 학기 공부를 쉬었더니 제가 저녁마다 ‘막장’ TV 드라마를 보고 있더라고요. 

매일 사이버대 강의를 들으면 시간도 잘 가고 재미있어요. 


지금 하는 공부 마치면 또 다른 공부에 도전 할 거예요. 

우리 사회가 초고령사회가 돼 가고 있지 않습니까? 


기업이나 단체 등이 건강한 노인에게 자기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주면 좋겠어요.”


만학이 더 꽃 피려면 노인 고용을 우대하고 장려하는 사회 분위기가 되어야 할 것 같다. 



한국노컷뉴스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