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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건희씨가 지난해 1월 선교단체 월드오브갓(WOG) 주최 집회에 초청받아 WOG 관계자와 대화하는 모습.

청년은 맨손으로 취객의 토사물을 쓸어 담았다. 
2014년 3월 14일 왕십리 방향으로 향하는 분당선 지하철 안에서다.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눈살을 찌푸리며 뒷걸음치던 승객들은 그 자리에 멈춰서 청년의 모습을 지켜봤다. 

청년의 옷엔 취객이 쏟아낸 토사물이 잔뜩 묻어있었다. 

한 20대 여성이 휴지를 들고 다가왔고, 이어 승객 5∼6명이 더 모여 함께 토사물을 치웠다. 
당시 한 방송사는 이 모습을 미담으로 소개했다. 

잠시 뒤 술에서 깬 취객이 이름을 묻자 청년은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그냥 
'예수 믿는 청년' 이에요." 

지난 5일 늦은 밤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이 ‘예수 믿는 청년’을 만났다. 

김건희(34)씨. 잠시 동안 당시 상황을 회상하던 김씨가 입을 열었다. 

“그때는 취객이 마치 제 모습 같다고 생각했어요. 
의도치 않게 토를 했는데 스스로 수습할 수가 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잖아요. 
저도 그럴 때 많아요. 
문제는 생겼는데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그래서 제가 그 자리를 피하면 안 될 것 같았어요.” 

김씨는 틈이 날 때마다 지하철역을 자주 찾아 노숙인을 돕는다. 

그는 노숙인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수많은 아버지들이 그를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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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역에서 아버지라 부르며 노숙자의 손을 닦아주고 있는 김건희씨.

 처음 보는 노숙인을 만나면 명함을 건네며 “어려운 일이 생기면 꼭 연락 달라”고 한다. 
그의 명함엔 ‘예수 믿는 청년’이라고 적혀있다. 

지난해 6월엔 김씨가 노숙인을 챙기는 모습의 동영상이 페이스북 등을 통해 퍼졌고 조회 수는 현재 2만9000건을 넘어섰다. 

사람들은 그를 ‘귤 아티스트’라고 부른다. 

친구 병문안을 가면서 귤에 웃는 얼굴을 그려 줬는데 친구가 그걸 그렇게 좋아했단다.

 ‘지하철 아버지들도 이 귤을 좋아하시겠지.’ 이런 생각을 하곤 웃는 얼굴이 그려진 귤 한 박스를 들고 지하철역을 찾았다. 

그런데 한 노숙인이 그 귤을 받더니 흐느끼기 시작했다.
 김씨는 말없이 노숙인을 안아줬다. 

“구걸하며 사는 자신의 모습이 짐승처럼 느껴져 스스로 목숨을 끊으러 가던 분이셨어요. 
그런데 웃는 얼굴이 그려진 귤을 받으니 자신이 사람대접 받는 것처럼 느껴졌대요. 
그리곤 다시 살기로 결심하신거죠. 정말 흔한 귤 하나도 하나님께서 하시니 생명을 구할 수 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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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씨가 만나는사람들에게 건내는 웃는 얼굴이 그려진 귤.

그 후로 김씨는 노숙인 거리상인 소년원생 등을 만날 때마다 웃는 얼굴이 그려진 귤을 준다. 
그렇게 만난 사람이 6만 명이 넘고 지난 한 해 귤을 사는 데만 1000만원을 넘게 썼다. 

연극배우이자 대안학교 상담교사인 그는 자신이 번 돈을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데 돌려주고 있었다. 

장난끼 가득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던 김씨가 갑자기 시선을 아래로 내린 뒤 말을 멈췄다. 
잠시 뜸을 들이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을 때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많은 사람들이 저의 예전 모습을 보며 칭찬해 주세요. 당연히 기분이 좋죠. 
그러면 저는 또 그 이미지를 지키려고 애쓰게 되죠. 
당장 오늘은 그렇게 살지 못했는데 말이에요. 제가 칭찬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의 행동을 통해 예수님만 드러났으면 좋겠어요.” 

그의 명함에 왜 직업 대신 ‘예수 믿는 청년’이라고 적혀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국민일보 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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