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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전 목사
<연세중앙교회담임>


그 자리에서 누구도 주기철 목사님처럼 신사참배 강요를 강력하게 저지할 만한 사람이 없었기에 결국 그날, '신사는 종교가 아니므로 참배는 교리를 위배하지 않는다."라는 논리로 신사참배를 결의하고 말았습니다.

우상숭배 하지 말라는 제 1계명인 하나님의 절대적인 말씀이 일본 형사들의 총부리와 칼날 앞에서 잔인하게 묵살당한 것입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칼날과 총부리 앞에서 목숨하나 부지하려고 나를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구원하려 십자가에 피쏟아 죽어 주신 주님을 여지없이 내팽개친 치욕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목숨을 위협하던 총부리와 칼날이 얼마나 두렵기에 크신 하나님의 절대 권위와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토록 냉정하게 짓밟을 수 있었을까요?

내 목숨은 다쳐도 하나님 말씀은 절대 다치면 안됩니다.

내가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보전해야 하나님께서 다치지 않습니다.

또한 내 영혼도 안전하게 보전받을 수 있습니다.

주기철 목사는 신사참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수차례 투옥되어 사람의 육체로는 견딜 수 없는 모진 고문을 당하였지만 끝까지 하나님 말씀을 지키다가 47세라는 젊은 나이로 감옥에서 마침내 장렬하게 순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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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철 목사와 오정모 사모

오늘날 목사도, 직분자도 주기철 목사와 같이 죽어도 날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배신할 수 없다는 순교전신을 가져야 합니다.

결박당하여 몽둥이로 맞고 칼로 베이고 심지어 총에 맞아 죽을지라도 하나님 말씀은 보전되어야 합니다.

죽음의 고통이 아무리 무서워도 하나님 말씀을 보전하지 못하고 예수를 부인해서 가는 지옥은 죽음의 고통보다 억만배 더 무서운 고통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왜정시대 사람들은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무참히 고문당하는 주기철 목사를 보고 "야! 담대한 사람이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기철 목사는 영적으로 볼때에 담대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날 구원하시려 십자가에 피 흘려 죽어주신 예수의 그 큰 사랑을 배신할 수 없는 신앙인격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우상숭배의 죄로 지옥에 가서 견딜 자신이 없으니까 그러게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신사참배를 거부했던 것입니다.

지옥 갈 각오를 하고 신사참배 한 사람들이 오히려 참으로 담대한 사람들입니다.

모진 매와 총칼은 끝이 있지만 지옥의 고통은 끝나는 날이 없습니다.

지금은 믿음이 있다고 생각해서 절대로 예수를 부인하지 않을 것 같지만 견딜 수 없는 고문의 고통속에서 목숨의 위협을 받는 그 순간이 되어봐야 우리의 믿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 죽을지언정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마 26:35) 하고 호언장담했지만 가야바의 안뜰에서 죽을 매를 맞는 주님을 보고 모른다고 세번이나 부인했습니다.(마 26:69~75).

언젠가 죽고 없어질 목숨 하나 부지하려고 구세주 앞에서 그렇게 비겁하게 변질되었던 것입니다.
목숨은 복음 앞에 초라해 집니다.

목숨은 그저 복음을 수종드는 하인, 사환, 종일뿐입니다.

복음은 나의 생명의 왕이요, 나를 영원히 사랑하는 영생의 생명입니다.

내 육체는 복음의 시녀와, 복음을 시중드는 일꾼이 되어야만 합니다. 

시녀는 죽어도 왕은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복음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일꾼은 죽음이 두렵지 않고 어떤 결박 매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직분자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권능이오, 힘인 것입니다.

      <계속> 
<연세중앙교회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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