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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의 발길이 닿을 수 없는 경기도 가평군 북면 화악산(華岳山·1468m) 정상에 하늘 아래 첫 교회가 있다. 

공군 제8983부대(대대장 김덕주 소령) 내에 있는 화악기지교회와 공군 제8979부대(포대장 권승환 소령) 안에 있는 로뎀나무교회이다. 

화악산은 경기도에서 가장 높은 ‘경기 5악 중’ 으뜸이다. 

한 여름 우거진 숲에는 이름 모를 들꽃들로 천상낙원을 이룬다. 

평균 기온은 산 아래보다 8도 정도 낮고 이르면 9월 중순부터 이듬해 5월 중순까지 눈이 내리는 격오지다. 

한겨울엔 체감온도가 영하 40도를 넘는다. 

제64주년 국군의 날을 8일 앞둔 지난 22일 오전 화악산 정상에 올랐다. 
산꼭대기에서 출발한 단풍은 1000m 고지에서 하산을 서두르고 있었다. 

그곳엔 남들이 선뜻 가기를 꺼려하는 격오지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 묵묵히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 지휘관과 국군장병, 그 안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신앙생활에 힘쓰는 신우회 장병들, 그들을 돌보는 현역 군종목사와 민간 성직자들이 있었다.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두 교회

화악기지교회는 1979년에 창립됐다. 

98년까지는 현역 군종목사가 근무했지만 안타깝게도 과로로 순직한 이후 구원서(79) 목사가 15년 째 주일 예배를 인도하고 있다. 

겉에서 보면 낡고 오래된 창고 건물로 보인다. 

교회는 이 건물 2층에 있다. 

34년 동안 온갖 풍상을 다 겪은 이 건물은 시멘트 블록으로 맨살을 다 드러낸 채 또 한번의 엄동설한을 앞두고 있다. 

교회 입구 왼쪽 벽에는 옅은 하늘색 바탕에 독수리 날개를 형상화한 벽화가 이방인의 눈길을 끌었다. 

‘날고 싶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담배를 많이 피우면 독수리 날개가 까맣게 타버려 날 수가 없다는 메시지가 담긴 것으로 ‘담배 연기 없는 건강한 부대를 만들자’는 의미가 담겼다고 했다. 

벽화를 그린 이영노(23) 병장은 730일간의 병영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지난 23일 제대했다. 

신우회장 노희석(23) 병장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환경이 달라지면 쉽게 적응을 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자신의 속을 잘 드러내지 못했던 노 병장의 성격은 이곳에서 완전히 달라졌다. 

노 병장의 입대 동기인 신원상 병장은 “동기인 노 병장의 노력으로 지난해 5∼6명에 불과했던 신우회 회원이 3배 이상으로 늘어났다”고 동료를 추겨 세웠다. 

로뎀나무교회는 2007년에 창립됐다. 

교회는 공군사관학교 22기 출신인 예비역 대령인 배효직(62) 목사가 후원금을 받아서 세웠다. 

조종사 출신의 배 목사는 남은 인생도 군과 함께 하고 싶어 뒤늦게 신학을 공부하고 2010년 목사 안수를 받고 1년 9개월 전부터 이 교회 사역을 담당하고 있다. 
주일 예배는 오전 10시30분에 드린다. 

참석 인원은 15∼20명 정도로 40명이 넘을 때도 있다. 

대전 침신대 기독교육학과 2학년 재학 중 휴학하고 입대한 유선재(23) 일병은 애초에 일반대학에 다녔다. 

술과 담배로 찌든 생활에 염증을 느끼던 어느 날 과감히 자퇴하고 다시 수능시험을 봐 신학도가 됐다. 

이전까지 어머니한테 막 대하는 등 못 된 아들에서 참 효자로 거듭났다. 
요즘엔 짧은 문자도 자주 날린다. 

“사랑하는 어무니~~~ 아들입니다요. 잘 지내시죠? 어떤 상황이든 힘내십시오. 어머니의 삶 속에 늘 주님의 은혜와 기쁨과 사랑과 평강이 넘치길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위해서 기도할게요.”

신우회를 이끌고 있는 성정현(21) 상병도 1지망으로 격오지 근무를 선택했다. 

성 상병은 매주 일과를 다 소화하고 주말에 교회 활동도 앞장서 맡겠다고 자임할 정도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바뀌었다. 

울산이 고향인 운전병 김동기(21) 상병은 “아버지게 죄송하지만 어머니 신앙을 따라 크리스천이 된 이후 장손이지만 제사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현장에서 만난 군종목사 김요한(28·공군금성교회) 대위는 춘천, 가평, 화천 일대 영서지역을 순회하며 관제대대들과 유도탄포대 장병들을 섬기고 있다. 

김 대위는 이날 점심시간을 이용한 짧은 특별예배에서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갈 5:1, 13∼15)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자유를 빼앗기면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여러분 같은 군인은 일부 자유가 제한됩니다. 그것이 불편할 때가 많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위기상황이 닥쳤을 때 가장 잘 대응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렇듯 우리의 자유는 한정된 속박이 존재합니다. 

만약 이 자유를 헐값으로 생각하고 마음대로 사용한다면, 아니 오히려 다시 죄에게 져서 반납 한다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한 모든 일들을, 아니 예수님 자체를 싸구려 아니 공짜처럼, 무가치하게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이미 자유로워졌습니다.”
하늘아래 첫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군장병들은 하루의 피곤을 말씀으로 털어내고 있었다. 


사모와 화악산을 바꾼 목사님

화악산을 내려와 가평역으로 가는 길에 구 목사가 시무하고 있는 성도교회를 찾았다. 

군종교육대 1기, 교번 1번인 구 목사는 당뇨합병증으로 10년 동안 투병하던 사모를 4년 전에 하늘나라로 먼저 보낸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구 목사는 주일마다 화악기지로 가는 길목에서 사모와 영적인 데이트를 한다. 

그의 사모는 800m 고지 커다란 단풍나무 아래에 잠들어 있다.

 “서울로 돌아가자는 사모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한 것이 한이 됩니다. 하지만 화악기지교회 장병들을 두고 돌아설 수 없었습니다. 
이제 한두 주 정도만 지나면(단풍이 들면) 사랑하는 우리사모가 발그스레한 얼굴로 저를 반겨줄 겁니다. 
한 20년 정도 더 화악기지교회를 섬기다가 100세쯤 사모 곁으로 갈 생각입니다.” 

구 목사는 사모의 병 수발을 하면서 화악기지교회를 섬기는 일 외에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았다. 

팔순을 앞둔 구 목사는 “요즘 핫이슈가 되고 있는 병영 내 악습과 여러 사건과 사고로 군 수뇌부가 골치를 앓고 있다”면서 “군의 소통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탁월한 대안은 종교활동 활성화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배 목사는 남은 생애를 공군과 함께 하겠다는 열정으로 매주 서울과 가평을 오가며 군인교회를 섬기고 있다. 

배 목사는 군선교에 대해 한국교회 성도들의 기도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젊은 장병들이 여러 가지 문제로 힘들어 할 때 가장 빨리, 또 유효하게 돕는 것은 종교 활동이 최고입니다. 군인교회는 병영생활 중 장병들의 빠른 적응을 이끌어 낼 뿐만 아니라 신앙전력화를 통한 무형전투력 강화를 통해 업무효율 증대, 사고예방 효과를 이끌어 냅니다.”

화악천 인근 낮은 곳에도 군인들을 섬기는 젊은 교역자가 있다. 

제8979부대 행정병들과 다문화 가정, 독거노인들을 섬기고 있는 화악교회 우지훈(32) 전도사다. 

도시에서 주일학교 아이들을 가르치던 우 전도사는 2012년 2월에 결혼해 그해 12월에 아들 하선군을 낳고 4일 만에 화악교회에 부임했다. 

우 전도사가 지난해 봄 교회 앞뜰에 심은 벚나무는 어느새 아들의 키를 훌쩍 넘겼다. 

웃는 모습이 더욱 아름다운 우 전도사가 악수를 하면서 한 마디 던졌다. 

“제가 이곳 사람들에게 소망을 줘야 하는데, 돈을 줄 수도 없고… 참된 소망이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님만이 참 소망이시고 또 진리가 아니겠습니까.”

<국민일보 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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