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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설교할 때 성도들과 몇 번 눈을 마주치는가? 혹 설교 원고에 시선 고정, 이건 아니겠지? 껄끄러운 정치적 성향과 견해를 이야기하진 않았나? 과연 나는 ‘떨리는 목사’인가, ‘설레는 설교자’인가?”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속’ 불편한 목사님 분명 계실 겁니다. 

그런데 이달 초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주최로 목회자의 설교 표절에 관한 세미나까지 열린 것을 보면, 이런 돌직구형 질문이라도 수용하면서 목사님 설교 스타일을 한번쯤 점검해보는 것, 괜찮지 않을까요. 

주일마다 성도들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진짜 말씀’을 듣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은 어떤 말씀에 설렐까요? 

일산광림교회 박강월(61·주부편지 발행인) 권사는 “비전에 대한 설교를 들을 때 가슴이 벅차오르면서 도전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온누리교회 조애신(49·토기장이 대표) 안수집사는 “내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말씀을 적용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메시지를 들을 때 감동한다”고 했습니다.

곽선희 조용기 이동원 원로 목사님은 지금도 강단에서 최고의 메시지를 들려주십니다. 이분들이 ‘현역’에서 빛날 수 있었던 건 철저한 준비를 통한 ‘영적 권위’가 뒷받침됐기 때문입니다. ‘명 설교가’ ‘설레는 설교자’가 되기 위한 준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설교는 과학입니다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님은 전세값 폭등으로 서민들이 한창 힘들어할 때 “집을 갖고 있는 우리 교회 성도 만이라도 집세를 올리지 말자”고 설교했습니다. 

목사님 말씀에 성도들은 순종했고, 그런 은혜를 예배 때 함께 나눴습니다. 

성도들은 목사님 말씀 참 잘 듣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성도가 그럴까요? 

이 교회 성도들은 목사님 설교에 감동해 순종했던 겁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하는 능력입니다. 

설교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회중에게 설명하고, 회중이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설교자는 효과적인 말하기 기술을 익혀야 합니다.

말하기 전문 강사들은 “훌륭한 인품과 영성을 가졌다는 것과 그것을 회중에게 전달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즉 100의 내용을 가졌다 해도 50밖에 전달하지 못하면 설교자는 50점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80밖에 갖지 못했더라도 그것을 전부 전달하면 그는 80점입니다. 

물론 50밖에 모르는 사람이 80을 전달하면 ‘거짓’이 되지만 말입니다.
그러니 설교 준비는 과학적으로 해야 합니다. 

준비과정 없는 강의가 이해하기 어려운 추상화에 불과하듯, 설교나 강의가 ‘예술’이 되려면 말하고 설명하고 설득하는 방법이 과학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마이크 상태, 엠프 점검, 악기 조절 등 예배에 필요한 모든 기술적인 부분까지 다 포함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청해야 합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하나는 전할 내용과 설교의 주제 말씀을 구성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연습하는 것입니다. 

전할 내용은 목사님의 ‘고유 영역’이니 코멘트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설교 준비를 ‘설교문 쓰는 것’으로 생각해선 안 됩니다. 

설교문 쓰고, 설교 준비 끝? 이건 절대 아닙니다.

연습(리허설)을 해야 합니다. ‘원고 한번 보고 성도 한번 바라보고’를 반복하다 강단에서 내려오는 건 더 이상 설교가 아닙니다. 

설교 원고에 의존하는 건 ‘읽기’입니다. 

단순한 읽기를 온몸으로 말하는 ‘구어체 스토리텔링’으로 발전시키려면 연습이 필요합니다.

먼저 설교 원고를 암기해야 합니다. 금·토요일마다 예배당 강단에 올라 카메라 앞에서 수없이 설교 리허설을 합니다. 

표정이나 목소리, 발음 등이 부자연스럽다면 일기예보를 전하는 기상캐스터를 유심히 관찰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읽는 설교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영상 시대에 맞는 표현방법이 필요합니다. 

시대가 변한 만큼 설교의 표현 방법도 달라져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게 시선입니다. 

시선은 성도와의 소통의 끈이니까요.


설레는 설교자의 네 가지 유형

성도들을 가슴 떨리게 한 설교자의 유형은 크게 네 가지로 꼽을 수 있습니다. 

첫째 ‘보컬형’은 음성을 통한 좋은 발음과 목소리를 최대한 활용합니다. 
자연스럽고 효과적인 목소리가 성도들에겐 매력적으로 들립니다. 
말씀이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순회선교단 김용의 선교사님이 여기에 속합니다.

둘째 ‘비주얼형’은 표정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설교문을 보지 않습니다. 
계속 성도들과 눈을 마주치고, 미세한 표정까지도 함께 소통하다보니 성도들이 설교자에게서 눈을 뗄 수 없습니다. 
설교문을 완벽하게 암기하고 오랜 연습을 했을 때만 가능합니다.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 이재철 목사님이 그렇습니다.

셋째 ‘스토리텔링형’은 화법이 구수합니다. 
할아버지가 옛날 이야기하듯 설교합니다. 
초신자들이 이런 유형을 좋아합니다. 
쉽게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지요. 
대전중문교회 장경동 목사님이 쉽고 재미있게, 다양한 구어체 화법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끝으로 ‘라이프형’은 삶이 곧 메시지, 복음입니다. 
보컬과 비주얼이 약해도 삶 자체로 모든 것을 덮을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 원로 방지일 목사님의 음성은 약해도 그분의 설교에 감동하는 건 목사님의 삶이라는 배경이 있기 때문입니다.
 ‘밥퍼’ 사역을 하는 최일도 목사님도 삶으로 설교하는 유형입니다.

이에 반해 꼭 피해야 할 설교자의 유형도 있습니다. 

언제 끝날지 예측불허의 설교를 하는 ‘타임아웃형’은 성도들이 싫어합니다. 
설교의 주제를 계속 빗나가는 ‘방황형’, 자료 인용이 지나치게 많은 ‘교양강좌형’, 성도들을 웃기려고만 하는 ‘개콘형’도 피해야 합니다.

가끔 설교 중 ‘저’를 ‘나’라고 표현하지 않나요? 

반말투의 ‘무례형’도 꼭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요즘엔 설교할 때 가족 이야기도 많이 합니다. 

유학간 자녀 이야기는 때에 따라선 자랑 같이 들립니다.  이런 ‘패밀리형’도 피해야 합니다. 

이밖에 리허설 없이 강단에 오르는 ‘노허설(노 리허설)형’, 누가 대필해주는 것도 모자라 그대로 베끼는 ‘표절형’은 가장 큰 문제입니다.

종합해보면 ‘설레는 설교자’에게는 세 가지 기술이 존재합니다. 

짧은 시간에 복음의 핵심을 전하는 ‘명확한 전달력’과 성도의 가슴을 울리는 ‘공감력’, 그리고 ‘신뢰’입니다. 

같은 말이라도 분명 존경과 신뢰를 받는 분이 전하는 메시지라면 효과는 다르니까요. 

대중에게 존경 받는 목사님은 그저 보는 것 만으로도 설렙니다. 

화려한 말대신 성경적 삶으로의 실천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겠지요.

설교하러 단상에 섰을 때 ‘떨리는’ 마음이라면 분명 준비가 부족한 것입니다. 

이제 스스로에게 답을 해보시겠습니까.

 “나는 ‘떨리는 목사’인가, ‘설레는 설교자’인가.”
<국민일보 미션  
노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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