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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이나 독거노인들에게 무료 점심을 대접하는 다일공동체 밥퍼나눔운동본부에는 하루에 수백명이 식사를 하러 온다. 

그런데 이들은 그냥 밥을 먹지 않고, 백 원씩 자존심유지비를 내고 식사를 한다. 

모아진 자존심유지비가 최근에 천만 원이 넘었다는데, 이름만큼 정말 자존심있게 사용되고 있었다.

지난 25일. 서울 청량리 쌍굴다리 옆에 세워진 밥퍼운동본부에는 오전 11시부터 시작되는 점심식사를 위해 벌써 긴 줄이 늘어섰다. 

식사하러 온 이들은 찌그러진 작은 냄비에 백 원씩 내고 식당 안으로 들어간다. 

이른 바 자존심유지비다. 

21년 전 당당하게 밥값을 내고 밥을 먹겠다는 한 노숙인의 백 원에서 시작됐다. 
하루에 쌓이는 자존심유지비는 3-4만원 정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기초생활수급비를 받는 날엔 더 많은 자존심유지비가 들어온다. 

식당 문앞에서 냄비를 들고 인원을 체크한 박재형 집사(다일교회/봉사자)는 "오늘은 772명이 밥퍼를 찾아왔는데 어르신들이 자존심유지비를 평소 보다 좀 많이 내신 것 같네요"라며 웃어보인다.
그간 자존심유지비는 또 다른 이웃을 위해 소중하게 사용됐다. 

밥퍼 후원자가 많지 않았던 초기에는 매일 식사마련하는데 사용됐지만, 후원자가 점차 늘면서 어려운 이들이 모은 돈인 만큼 더 값어치 있게 쓰기로 한 거다. 

백 원 짜리 1만개가 모여 100만원이 됐을 때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 목회자를 양성하라고 신학대학교에 장학금으로 기부했다. 

필리핀, 네팔 등 지구촌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해외 밥퍼 설립에 백만 원, 2백만 원씩 전달하기도 했다. 

캄보디아 두 아이의 심장수술과 허리수술 비용도 보탰다. 

십시일반 모은 자존심유지비가 얼마 전에는 천만 원을 돌파했다. 

점심 배식이 시작되기 전 최일도 목사(다일공동체 대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앞에서 자존심유지비의 사용처를 알렸다. 

"그 천만원을 아프리카 다일공동체 탄자니아 쿤두체의 밥퍼 옆에 꿈퍼를 세우기로 했고, 우간다 다일공동체도 일부 지원하기로 했는데 아프리카에서 그 소식 듣고 너무너무 감사하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고맙습니다."

꾸벅 인사하는 최 목사를 향해 흐뭇한 박수가 이어졌다. 

비록 백 원이지만 당당하게 식사하면서 좋은 일도 할 수 있어 동전을 내는 마음도 기쁘기만 하다. 
10년째 밥퍼에서 점심을 먹는다는 박00 할머니(75세). 

"백원 가지고 뭣에 쓰겠어요. 근데 아프리카 학교도 짓고 좋은 일에 쓰인다니 고마운 일이지." 뿌듯한 마음이 느껴졌다. 

최일도 목사는 "동전 백원도 쌓이고 쌓이고 모이고 모이니까 사람 생명을 살린다"면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정신을 이 분들이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동전 하나로는 하찮게 여겨지는 백 원. 

하지만 형편이 어려운 이들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나라밖 굶주리는 어린 아이들의 생명을 살리고 있다. 
<CBS 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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