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신교회 박종순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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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말 서울 충신교회에서 은퇴해 46년의 목회여정을 끝낸 박종순 목사는 “이제부터 여유로운 마음을 갖고 한국교회와 세계선교를 위해 봉사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서울 충신교회를 은퇴한 박종순(71) 목사는 평생을 신앙과 신학, 지성과 이성이 균형을 이루는 목회를 추구해왔다.
이제 성역을 조용히 내려놓고 한국교회를 위한 새로운 비전을 품고 있다.
합리적인 교회 지도자로 추앙받는 박 목사가 던지는 ‘사심(私心) 없이 대의(大義)를 추구하라’는 메시지는 의미심장하다.
박 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장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한국세계선교협의회 이사장, 국민문화재단 이사장, 숭실대 이사장 등을 맡으며 품격 있는 교회 지도자의 모델을 보여줬다.
박 목사를 11일 서울 이촌동 충신교회에서 만났다.

-35년간 목회하시던 정든 교회에서 은퇴하셨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두 달밖에 안됐는데 강사로 초청하는 데가 많아요. 은퇴하기 전보다 더 바빠진 것 같아요. 1966년 목사 안수를 받았으니 46년이 흘렀습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한국교회를 섬길 기회가 많았지만 가슴속엔 ‘목회자로 살다가 끝을 맺고 싶다’는 목양일념으로 살아왔어요. 목회를 내려놓으니 홀가분합니다.
그동안 놀아도 노는 게 아니고, 여행을 가도 가는 게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꿈도 교회 꿈을 꿨습니다. 이제는 충신교회라는 담장을 넘어 한국교회, 나아가 세계선교에 눈을 돌릴 수 있는 정신적 여유가 생겼습니다.
앞으로 한국교회와 세계선교를 위해 종노릇을 하고자 합니다.”

-평생 견지해 오신 목회 철학을 말씀해 주시지요.

“저는 평생 ‘바른 신학’과 ‘균형 목회’라는 두 가지 기둥을 붙잡고 달려왔습니다.
바른 신학을 가져야 교회가 바로 갈 수 있고 균형을 잡아야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바른 신학, 균형 목회, 건강한 한국교회가 되려면 리더십 훈련부터 해야 합니다. 리더십이 확립돼야 교회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국지도자센터를 열고 지난해까지 네 차례에 걸쳐 중견목회자 세미나를 열었고 올해 10월 중 세미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 한국교회 안에 여러 가지 일들이 연이어 터지고 있습니다.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 우선 부끄럽고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10만명 이상의 목회자 중 열이나 스물에 불과한 이야기지 전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 목회자들은 현장에서 피땀 흘리며 희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런 일들이 없으면 좋겠지만 이왕 불거진 사건이라면 자성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구상 시인의 ‘자수’라는 시가 있습니다. ‘그 어린애를 치어 죽인 운전수도 바로 저구요/ 그 여인을 교살한 하수인도 바로 저구요/ 그 은행 갱 도주범도 바로 저구요/ 실은 지금까지 미궁에 빠진 사건이란/사건의 정범이야말로/ 바로 저올시다.’ 시인은 모든 사건 뒤에 자신이 있다고 고백합니다. 내 탓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너 때문이다’며 상대를 짓밟고 매도하는데 열을 올립니다. 결과는 갈등 투쟁 대립 분열 증오로 치달을 뿐이에요.
참된 지도자는 나무 하나하나를 보지 않고 한국교회라는 숲 전체를 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바깥엔 교회를 넘어뜨리려는 세력이 즐비하게 서 있는데 이런 건 아랑곳 하지 않고 안에서 내 탓, 네 탓을 따지다보면 공멸할 우려가 있어요.”
박 목사는 목회경험에서 ‘자가 치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문제를 문제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사건을 침소봉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목회자가 성도들의 잘못을 일일이 확인하고 체크하다보면 상처만 커지고 문제만 확대된다”면서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지나가면 ‘자가 치료’가 되는 경우가 많기에 결정적인 문제를 제외하곤 느긋해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주변에선 목사님이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고 시련 없이 목회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지독하게 가난했어요. 조사(전도사)였던 아버지가 세살 때 돌아가셨는데 유산이라곤 ‘구약’ 한 권뿐이었습니다.
가난이 정말 싫었어요. 하지만 절대 티내지 않았어요. 배고플 땐 산에 가서 냉수 먹고 고기 먹은 것처럼 이쑤시개를 물고 내려왔습니다.
가까운 친구들조차 제가 부잣집 아들인 줄 알고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제가 정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게 있는데 그건 목사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경우입니다.
충신교회 건축할 땐 24시간 전등을 켜야 살 수 있는 지하방에서 살았어요. 지금껏 한 번도 사례비를 갖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습니다. 없으면 굶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목회자가 최소한 그런 자존심을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돈 좀 있다고 자랑하는 것도 건방지지만 가난하다고 티내는 것도 좋을 것 없습니다.
성도가 100명도 안 모인다고 해서 목회 실패자입니까. 목회의 성패는 양이 아니라 얼마나 성도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웠느냐,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최선을 다했느냐에 있어요. 그래서 개척교회 목회자들이 기죽을 필요 절대 없어요.”

-목회 여정 중 소중하게 붙잡았던 성경말씀이 있으시다면 무엇입니까.

“빌립보서 4장 13절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와 마가복음 9장 23절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는 말씀을 좋아합니다.
한때 강단 앞에 써 붙이기도 했어요. 한국교회의 큰 ‘그늘’인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님도 이 말씀을 좋아하시지 않습니까.
이 어른이 세계적인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미래지향적이고 긍정적인 신앙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박 목사의 닳아빠진 갈색 샘소나이트 서류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균형’과 ‘원칙’의 한국교회 지도자와 늘 함께했을 손때 묻은 가방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가치를 발하는 오래된 가방처럼 품격 있는 교회 지도자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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