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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전 목사
<연세중앙교회담임>

디아코노스, 즉 직분자라는 말에는 하인이라는 뜻이 깊이 담겨있습니다.

주님이 내 죄를 사해 주시려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공로를 기억하는 사람은 주님 은혜에 감사해서 교회의 하인, 곧 직분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인인 직분자가 교회를 도전하고 교회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면서 하나님 자리에 앉으려 할  때 과연 교회의 몸이신 주님께서 얼마나 불편하시겠습니까? 

"내가 네 죄 때문에 죽었는데 네가 나를 또 업신여기느냐?"라고 하시지 않겠습니까?

엘리사가 활동하던 당시에 북이스라엘은 아람나라의 속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람 군대 장관 나아만이 나병에 걸려 애를 태우던 중 자기 집에서 일하는 이스라엘 계집종의 소개를 받고 능력 많은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갑니다.

그런데 아람나라의 최고 장군이 말과 병거를 거느리고 먼 길을 찾아 왓는데도 엘리사는 문밖에 나와 보지도 않고 하인 게하시를 보내서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라고 전합니다.

그 시대 최고 강대국의 군대 장관 나아만이 보니 건방지기가 짝이 없습니다.

"아니, 이런 무엄한 놈을 봤나? 내 생각에는 나와서 내 몸을 어루만지면서 고쳐 줄 줄 알았더니... 우리나라에는 요단강만한 물이 없더냐? 그보다 더 좋은 강이 얼마든지 있지 않는냐! 가자!" 하고 분을 내면 자기 나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왕하 5:11~12).

자기가 아쉬워서 불치의 병, 나병을 고치러 온 주제에 자존심을 내세우며 마차를 톨리려 하자 그 종들이 설득합니다.

그보다 더한 일도 하라 하면  그말에 순종해서 병을 고쳐야 하는데, 왜 그런 쉬운일도 못하느냐고 정중히 건의 합니다.

나아만은 나병이 낫는다는 말에 자존심을 접고 요단강으로 갑니다.

나아만을 태운 으리으리한 병거가 요단강 앞에 섰습니다.

나아만은 그 위엄이 대단한 금마차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직분은 금마차가 아닙니다.

나를 쓰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나아만이 금마차에서 내려오는 것은 교만과 자아가 무너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 다음으로 군대 장관의 투구를 벗습니다.

계급장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다음은 훈장이 붙은 옷을 벗고 속옷까지도 벗습니다.

그렇게 다 벗고 나니까 나균으로 흉하게 일그러진 푸르죽죽한 피부가 불쌍할 정도로 추하게 드러납니다.

우리가 직분이라는 겉옷을 벗을때 영적으로 나병환자와 같다면 참으로 큰일입니다.
이제 나아만은 선지자의 말대로 요단강에 들어갑니다.

나아만의 하인들은 요단강 바밖에서 치료를 기대하며 지켜보고 있습니다.

최고 강대국의 군대 장관 나아만이 세상 어떤 하인들보다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갑니다.

나아만이 초라한 몰골로 물속으로 한발씩 들어갈때 강가에선 자기 부하들의 건장한 체격이 얼마나 부러웠겠습니까?

우리는 내가 지금 요단강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될 나병환자 나아만 같은 존재임을 깨닫고 직분자로서의 마음 자세를 다시한번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직분자라는 계급장을 떼고, 내가 이래봬도 교회에서 큰일을 했다는 훈장도 떼고, 교회가 부흥하는 일에 이만큼 수고했다는 교만도 다 내려 놓아야 합니다.

즉 나병환자 같은 건방진 교만을 다 버리고 주님 앞에 엎드려 주님의 목소리에 순종해야 할 때라는 말입니다.

나아만 장군이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여 요단강에서 일곱번을 목욕하자 나병에서 깨끗해졌고 군대장관으로서 최상의 지위와 능력을 되찾았습니다.

이렇게 직분자는 하나님의 사역에 절대 복종함으로 아름다운 지위와 믿음에 큰 담력을 얻습니다.

나아만 장군이 모든 교만과 체면과 자존심을 내어 버리고 하나님의 사람의 말에 순종했듯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주의 일에 수종드는 직분자도 자기를 겸손하게 내려놓고 육신의 때와 영혼의 때에 충성한 결과를 얻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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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날 교회에는 어찌하여 하인이 되어야 할 직분자가 상전이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사자인 목사가 성령의 감동대로 무슨일을 하려면 장로, 권사와 상의해야 교회가 조용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 사역을 위하여 담임 목사에게 성령으로 명령하셨는데 감히 장로, 권사, 직분자들이 왜 자기들과 상의하지 않느냐고 교회를 시끄럽게 합니다.

심지어 목사를 자기와 맞지 않는다고 내쫓기도 합니다.

이는 엄연히 목사를 세우신 성령에 대한 도전입니다.

이런 직분자들이 하늘나라에 가서 받을 심판이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주님이 그 권사와 장로에게 "네가 하나님 행세하고 목사에게 명령했구나. 네 말을 듣고 목사가 움직였으니 네가 하나님 아니냐? 오늘까지 네가 하나님 노릇을 했노라."고 말씀하실때 이 사람들은 어떠한 처지가 되겠습니까?

그런데 이들은 성령께서 감독자로 세운 목사를 통하여 이루실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사역을 건방진 자기 뜻대로 방해하면서도 자기들이 충성되이 잘하고 있다고 오해합니다.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직분때문에 면류관을 얻고, 아름다운 지위를 얻고, 하늘의 영광이 충만해야지 직분때문에 무서운 심판으로 자기 영혼을 내던져서는 결코 안됩니다.

 <계속>
<연세중앙교회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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