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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선교에 16년간 헌신한 고 김길남씨의 영정사진과 신앙노트가 미국 시애틀 기드온동족선교 사무실에 놓여 있다. "굵주림보다 더큰 목마름' 책 표지.

 

 

1996년 3월, 특수부대 출신으로 평양에서 조선노동당 간부로 일하던 김길남(가명·당시 36세)씨는 주체농법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았다는 죄로 양강도 오지로 쫓겨났다.


머슴 같은 처지로 전락했지만 시련은 또 하나의 축복이었다. 하나님을 만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쫓겨 간 농장에는 농업기자재를 맡은 간부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북한 지하교회를 섬기고 있었어요.
갑론을박 끝에 체제를 비판하는 말들을 쏟아내자 그들이 나를 전도했습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는 심정으로 그들의 요청에 응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그는 여러 차례 하나님을 부인하고 또 부인했다.


유물론적 사고방식을 뼛속 깊이 교육받은 그로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을 믿을 수밖에 없게 된 사건이 발생했다.


타고 다니던 트랙터가 갑자기 산 중턱에서 술에 취한 것처럼 비틀거리더니 360도 회전하며 굴러떨어진 것.


‘이렇게 죽는 구나’ 하는 순간, 그의 입에서 평소 기도모임에서 외운 사도신경이 흘러나왔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순간, 놀랍게도 트랙터의 앞바퀴가 토끼 꼬리만한 뿌리에 걸리며 ‘툭’ 멈춰 섰다. 순간 마음이 탁 놓이면서 고백이 튀어 나왔다.


“하늘이 구원하였도다. 그래 하나님은 정말로 살아계신 분이야.”


그는 십자가군병이 됐다. 96년 6월 32명이 모이는 ‘복음통일기도회’라는 조직을 결성했다.
성경을 구하기 위해 국경을 넘나들었다.


경비대의 단속으로 총검에 찔려 정신을 잃기도 했다.


대기근으로 많은 사람들이 폐병과 홍역, 콜레라로 목숨을 잃자 레위기에 있는 말씀대로 소를 잡아 하나님께 번제로 드렸다.


이 일로 감옥에 끌려갔지만 때마침 전 세계적으로 광우병 논란이 일어났다.
소를 죽인 것은 큰 죄였지만 광우병을 이유로 둘러대고 겨우 풀려났다.


당국의 단속에 걸려 끌려가는 성도가 속출했다.
옥중에서도 끝까지 신앙을 지킨 성도들이 적지 않았다.


“94년 7월 8일 김일성이 죽고 나서 북한 땅은 기근으로 몸살을 앓았지요.
많은 사람들이 국경을 넘는 위험을 감수하기 시작했고, 이들을 통해 북한 땅에 다시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당국의 단속과 탄압에도 지하교회 성도들은 꾸준히 늘어났습니다. 김정일이 ‘예수쟁이는 즉석에서 처형하라’는 특별지시까지 내릴 정도였습니다.”


99년 겨울, 북한을 탈출한 그는 중국 땅에 기술학교와 신학교를 세울 계획을 세웠다.
신학교를 세우는 목적은 단 하나, 이곳을 졸업한 목회자가 북한 땅에 가서 목회활동을 하도록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제가 희생 제물이 되기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중국의 북한 접경지역에서 의문의 오토바이 사고로 숨진 그는 북한 생활과 영접과정, 그리고 북한 지하교회의 실상을 기록한 노트를 남겼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뒤 달라진 그의 모습과 생명을 무릅쓰고 하나님을 간절히 사랑하는 북한 동포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기록은 최근 ‘굶주림보다 더 큰 목마름’(두란노)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그의 16년 신앙노트를 책으로 엮은 기드온동족선교회 대표 대니 박 목사는 “순교를 각오하고 복음을 전한 김씨의 노트에 담긴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의 이야기는 한국교회가 북한을 향한 선교의 길을 포기할 수 없음을 알려준다”고 말했다.


<국민 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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