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즘 툭하면 예배를 회복하겠다, 예배를 바로 세우겠다는 사람들이 자주 목격되고 있다.  예배 회복이라니? 그럼 지금까지 우리가 드려온 예배가 잘못된 예배, 가짜 예배였단 말인가? 아니면 우리들의 예배는 크게 함량이 모자란 3류 예배 혹은 불의와 야합한 예배였다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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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집 아들 하나가 느닷없이 동네 한복판을 누비고 다니며 “우리 집을 회복해야 한다”고 떠들고 다닌다면 다들 그 집안에 심상찮은 일이 터진 것이라고 의아하게 바라보기 시작할 것이다.  

더구나 이렇게 예배 회복, 예배 회복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은 또 아주 애매모호한 말들을 즐겨 사용하면서 사람들을 헤 깔리게 만들어 놓기 일쑤다. 잘못하다간 예배 회복이 아니라 예배 혼란만 초해할 것 같다는 우려가 앞설 때도 있다.  

예컨대 ‘워십리더’란 말을 놓고 생각해 보자. 예배 회복을 위해 집회를 준비했다고 하면서 워십리더는 아무개라고 소개하고 있다. 워십리더를 전통적인 예배 환경에 적용해 보면 예배 사회자를 말함인가, 아니면 설교자를 말함인가? 아니면 성경 봉독자 혹은 대표 기도자?

아무리 활짝 열린 예배라고 가정해도 그렇다. 예배라면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찬양이 있어야 하고 예배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야 하고 또 그 말씀을 풀어 적용의 원리를 설명하는 설교도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드리는 봉헌 순서, 예배를 마치고 세상 속으로 파송되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위한 축도의 순서도 있어야 한다.
은혜 받고 성령 체험하면 됐지 주보에 깨알같이 박혀 있는 그 알량한 예배 순서가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따진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러다 아예 이단 삼단으로 빠지고 싶으면 무슨 짓을 못하랴!  

대개 열린 예배에 참석해 보면 찬양을 인도하는 사람이 기타를 연주하면서 한마디씩 툭툭 멘트를 날리기도 하고 간증이나 권면도 한다. 어느 때는 개인 신상에 관한 잡소리를 줄줄이 꺼내 들 때도 있고 그러다 감정이 격해지면 울기도 하고 소리치기도 한다. 때론 회중들에게 손을 올려라, 손뼉을 쳐라 갖은 주문을 다하기도 한다. 그를 두고 워십 리더라고 하나?

그러나 이렇게 형식 없이 떠들썩한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면서 드려야 할 예배의 경건성과 거룩성의 차원에서 본다면 글쎄, 이건 아니다란 생각을 갖게 한다.  

아무리 교회에 덜 친숙한 사람이나 예배당 환경에 거부감을 느끼는 소위 구도자들을 위해 십자가를 떼어내고 캬바레같은 요란한 조명등에다 값비싼 스피커를 고드름처럼 매달아 놓았을지라도 예배를 드린다고 모였을 경우라면 예배의 기본은 갖춰야 되지 않겠는가?

요즘엔 전통적인 예배와 구도자 예배, 혹은 열린 예배를 따로 드리는 교회도 늘어나고 있다.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는 뜻에서 가능하면 전통을 외면하고 찬양이나 영상 기기를 활용하여 예배 순서와 내용을 다양화하는 것은 참가자들의 문화를 배려한다는 차원에서 충분히 이해 가는 부분이다.  

그렇다 치더라도 그 동안의 모든 예배는 뭔가 잘못된 것이라고 꼬집는 것처럼 예배가 회복되어야 한다고 소리친다면 도대체 회복의 원점은 어디이고 회복의 방법과 주체는 누구란 말인가?
지금 우리들의 교회에서 드려지는 젊은이 예배나 감성적 모드의 예배를 덮어놓고 비판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새 것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덮어 놓고 옛 것을 거부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어휘를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한인교회들은 키보드, 드럼, 기타, 그 ‘찬양 3종 세트’를 준비해 놓고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렇지 못하면 ‘쌍팔년도’를 살아가는 교회로 비웃음을 살지 모르지만 사실 그런 컨템퍼러리 크리스천 뮤직도 한때의 유행이고 이를 주도했던 사람들에게서조차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더구나 요즘 지구촌의 젊은 기독청년들은 신비와 침묵, 묵상과 절제를 통해 경험하는 하나님께 더 큰 매력을 느끼고 있다는 기사들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컨템퍼러리를 받아들이는 넓은 가슴은 언제나 필요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교회가 지난 2천 여 년 역사를 통해 축적한 전통이나 형식을 깔아뭉개는 것도 복음의 전진을 막아서는 일이 아닐까?  

예배의 진정성을 말할 때 단골손님으로 소개되는 두 인물이 가인과 아벨이다. 둘 다 예물을 바쳤지만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것은 받으시고 한사람은 거부하셨다. 드리는 마음의 자세가 달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배의 회복도 형식에 매달려 그냥 건성으로 드리는 예배, 즉 ‘신령과 진정으로’와는 거리가 먼 개인의 영성의 깊이가 문제이지 유명세를 타는 어느 워십리더가 단 칼에 해 낼 수 있는 일이라면 그 ‘예배 수리 전문가’가 사람인가, 아니면 천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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