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퍼봉사 방송진행자 최선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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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분들 얼굴 나오면 큰 일 나요.” 카메라 렌즈를 바짝 들이대자 방송MC 최선규씨가 노숙자들의 모습이 나오지 않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따뜻한 밥 한 공기와 따끈한 국수 한 그릇이 세상을 데운다. 서울역 광장 신생교회는 매주 수요일과 주일 오전 11시에 노숙인과 부랑인, 출소자, 여행객, 쪽방 거주자들과 함께 열린 예배를 드린다.
MC 최선규씨는 예배가 끝나면 광장 남단에 있는 ‘해돋는 마을’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밥퍼’ 봉사대를 지휘한다.
최씨는 길거리로 내몰린 이들을 부축해 정직한 사람, 믿음의 사람, 섬기는 사람, 남을 칭찬하는 사람, 감사하는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일을 한다. 경인전철의 종점에 있는 ‘명동분식’은 겉으로만 보면 평범한 가게처럼 보인다.
하지만 주인 권장숙씨는 26년째 독거노인 등 소외된 이들을 섬기고 있다. 그녀가 삶아주는 국수 한 그릇엔 늘 복음과 사랑이 가득하다. ‘역전앞’엔 그들이 있다.

왜? 저들에게 밥을 줘야 하냐고요?
“욕을 하면 안 되지요. 좋은 일 하러 온 학생들에게 고맙다는 말은 못해도 그런 말을 하시다니요.”
지난달 31일 낮 12시20분. 서울역 광장 신생교회(김원일 목사)가 운영하는 ‘더불어 사는 세상 해돋는 마을’에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자원봉사하러 온 학생이 밥 한 주걱 더 달라는 노숙인의 소리를 잘못 알아들은 탓이었다.
나중에 소식을 들은 방송MC 최선규(50)씨가 화를 낸 그 노숙인에게 다가가 조용히 타일렀다.
젊은 노숙인들은 그를 ‘형님’이라고 불렀다. “형님, 잘못했어요. 막말이 버릇이 돼서 그만. 요 혓바닥이 문제라니까요,”
최씨는 5년 동안 CTS기독교 TV에서 신앙 간증 프로그램 ‘내가 매일 기쁘게’를 진행하면서 주일마다 서울역에서 ‘밥퍼’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벌써 2년6개월이 됐다.
“가끔씩 예배 시간에 깽판 놓는 사람이 있어요. 십중팔구는 출소한 지 얼마 안 되는 이죠. 자기의 존재감을 나타내려고 하는 거예요. 알고 보면 참 약한 사람이거든요.”
최씨는 사람이 배가 고프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느냐면서 지난해 어느 지하철역에서 일어났던 끔찍한 사건을 들려줬다.
한 노숙인이 지나가는 여자를 따라가 지하철역에서 철길 아래로 밀어서 사망하게 한 것이다. 돈을 달라고 했는데 ‘무슨 돈’ 하면서 외면한 것이 화근이 됐다.
그 노숙인의 대답은 기가 막혔다. “돈을 안 줘서 화가 나서 밀어 버렸다”는 것이었다.
최씨는 일반인들 중에는 무료급식 봉사활동을 아주 못마땅해 한다는 것을 잘 안다고 했다. ‘당신들이 자꾸 공짜로 밥을 주니까 저 사람들이 일 안 하고 얻어먹게 된다’는 주장이 틀리지 않기 때문이다.
“수박 겉만 봐선 속이 어떤지 알 수 없어요. 저 사람들 그냥 보면 멀쩡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어느 한 구석 성한 곳이 없어요. 누구든지 3번만 와보면 알게 됩니다. 아니면 3일 동안 한 번 굶어 보세요. 왜 저들에게 밥을 줘야 하는지….”
이날 밥퍼 봉사 활동에는 서울 삼일교회 청년부와 ‘아시아에서 아프리카 비전센터(AVC)’ 봉사단 40여명이 참여했다. 그래서 최씨는 다소 여유가 있었다. 그는 밥을 2인분 정도 남겨 놓고 누군가를 기다렸다. ‘2인1조’로 사이좋게 항상 서울역 광장 예배에 참석하는 이들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 사람들은 정말 줄 하나는 잘 서요. 새치기하다 들키면 맞아죽죠. 그런데 예외가 있어요. 그 두 사람한테는 서로 양보를 해요. 시각장애인과 반신불수가 된 분이죠. 이분들이 뒤늦게라도 나타나면 누구라 할 것 없이 먼저 앞에 세워요. 오늘도 안 오시는 것 같네요. 무슨 일이 없어야 할 텐데. 날씨가 추워지고 있어 걱정입니다.”

하나님과의 첫 거래에서 딸 살렸지요
‘교통사고 응급실 생명위독’. 최씨는 34세까지는 교회와는 담을 쌓고 살았다. 잘 나가는 아나운서였기 때문에 교회나 신앙 같은 데 눈 돌릴 겨를이 없었다. 믿음은 한 순간에 운명처럼 왔다.
 1993년 9월 25일. SBS TV ‘행복찾기’ 생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방송이 끝나기 10분 전 메모지 한 장이 전달됐다.
“저는 그때 하나님 제발 딸을 살려 달라고 애원했어요. 독실한 불교 집안에서 자랐는데 부처님이 아니고 하나님이라는 소리가 튀어나오는 것이었어요.”
최씨가 병원에 도착했을 땐 이미 의사는 딸의 생명을 포기한 상태였다. 그는 하얀 시트를 확 걷어치우고 딸을 얼싸안고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그런데 그 순간 싸늘하던 딸의 몸에서 온기가 돌아온 것이다. 입에서 ‘쿡쿡’ 하는 소리가 나서 손가락을 넣어 빼냈더니 검붉은 핏덩이가 한 움큼이나 나왔더란다.
급기야 딸이 눈을 뜨고 “아빠, 아빠, 우리 아빠 맞지?”하더라는 것이었다. 최씨 그날부터 예수를 믿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씨는 10여 년간 단순히 교회만 다니는 성도로 살았다.
2000년대 초반 사랑의 교회에서 고(故) 옥한흠 목사로부터 제자교육을 받고 많은 은혜를 받았다고 했다.
“옥 목사님한테 세례를 받고 나서 저도 목사가 되고 싶다고 했더니 목사가 되는 거도 좋지만, 평신도로 마이크 잡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 낫다는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최씨는 7∼8년 전 이사를 하는 바람에 교회도 경기도 분당중앙교회(최종천 목사)로 옮겼다. 매주 금요일 철야예배를 빠짐없이 드릴 정도로 신앙생활도 한 단계 성숙했다.
그러나 최씨는 세상적인 즐거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음주의 유혹을 스스로 끊을 수가 없었다. 어릴 때 기적같이 살아난 딸이 막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빗나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금요철야 예배시간에 모든 것이 자신에게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머리 된 아비가 변하지 않으면 꼬리 된 딸이 변하지 않는다.
넌 매번 해달라고만 하느냐, 이제 좀 베풀 줄도 알아야지, 가장 낮은 곳으로 가서 네 몸을 던지거라.”
‘술 끊어.’ 최씨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리는 성령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세 글자였다고 했다. 그날로부터 최씨는 알코올을 냄새도 맡지 않게 됐다.
최씨는 지난해 경기도 기흥 호수교회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방언의 은사도 받았다. 김우현 감독이 강사였다. 그날 최씨는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람을 봤다고 했다.
하얀 옷을 입은 예수님이었다. 너무 커서 얼굴을 쳐다볼 수 없었다고 했다. 최씨는 그분의 한쪽 발을 붙잡고 거의 1시간 동안을 바닥에 뒹굴면서 ‘주님, 잘못했습니다’를 외쳤다고 했다.
최씨는 한 끼 점심을 굶었지만 얼굴엔 행복의 미소가 가득했다. 연내에 창립되는 ㈔더불어 사는 세상 해돋는 마을(KCCMO) 운영위원장으로서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서다.
“지금 이 순간 우리의 곁에는 누군가 삶의 무게에 짓눌려 힘들어하며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들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과 위로의 말을 전해줄 사람이 필요해요.
이들에게 하나님의 참사랑을 보여준다면 그들은 분명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저도 바로 따뜻한 위로의 말과 사랑에 이끌려 하나님 앞에 불려 나온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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