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음주 운전 및 2급 살인죄로 구속이 되었다. 다행히 어머니 장례 예배 때는 재판과정이라 참석할 수 있었는데 어느 누구도 그를 위로해주는 사람이 없이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었다. 가족들은 어머니를 죽게 만든 아들을 원망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후에 이 사건이 아들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평생을 자식의 구원을 위해 기도해 오신 권사님이셨기에 하나님은 그렇게 데려가셨는지도 모른다. 결국 감옥에 수감되었지만 아들은 그날부터 어머님의 눈물의 기도와 자기가 어머니를 죽였다는 죄책감에 감옥 안에서 진행되는 모든 예배 및 성경공부에 참여하게 되었다. 스스로 새벽재단을 쌓고 면회를 가니 성경책을 원했다. 책은 외부에서 반입이 되지 않기에 여러 과정을 걸쳐 한국어로 된 성경책을 넣어 주었다.
날마다 성경을 읽으며 기도하며 찬양을 드리는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참회의 눈물과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해 가고 있었다.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순교를 하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단기 선교 팀이 경험을 하면서 하나님의 섭리를 체험하게 되었다. 타운 안에 있는 원주민 교회 예배에 참석하여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조금은 부족하지만 한 청년이 영어로 간증을 하고 이어서 말이 필요 없는 무언극 연극을 하였다.
예수그리스도의 일생을 조명한 것인데 연습할 때는 밝은 모습으로 하더니 어느덧 진지하게 진행이 되고 있었다. 이 연극에는 우리교회 여자 청소년 3명도 같이 참여하였다. 주인공이 아닌 구경하는 주민으로 참여 하였지만 연극이 시작되고 성령님의 역사가 나타났다. 예수 그리스도를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는 장면에서 이 아이들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온 팀들도 눈물을 흘리며 예수그리스도의 수난을 연기하고 있었다. 그곳에 참석한 모든 성도가 그 장면을 보면서 같이 눈물을 흘리며 은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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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이 끝나자 그 자리에서 아이들이 부둥켜안고 서로를 위해 기도를 드렸다. 새로이 헌신하고 결단하는 계기가 되었다. 언어는 통하지 않아도 연극은 힘이 있었다. 아이들도 처음에는 언어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는데 이 예배를 통하여 자신감이 생겼다. 한인 침례교회에서 이 소식을 듣고 단기 선교팀을 초청하였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들떠 있었다. 그런데 연극은 처음 원주민 교회에서 할 때와는 달리 큰 감동을 주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저녁에 돌아와 강평회를 하였다. 스스로 깨닫기를 교만이 얼마나 큰 죄인지 알게 하셨다.
처음 두렵고 떨림으로 기도하며 공연한 연극과, 자신감에 차서 참여한 연극의 차이는 너무나 차이가 났다. 하나님은 이 아이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함이 능력이고 승리임을 가르쳐 주셨다. 그 이후로 무슨 행사를 하던지 기도로 준비하며 겸손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했다. 준비해온 한국 고전 춤과 여러 가지 행사들은 방문하는 교회들마다 큰 은혜를 나누게 되었다.
1달간의 일정이 끝난 후 단기 선교팀은 한국으로 되돌아갔다. 그때 고등학생으로 선교를 따라온 한 소년이 훗날 전도사가 되어 다시 미국으로 찾아왔다. 하나님의 섭리는 참으로 놀라웠다. 독립 건물이 생긴 이후로 교회는 더욱 부흥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전도되었고 금세 성전을 가득 채웠다. 그 무렵 교육 전도사가 절실히 필요했다. 여기 저기 알아보고 부탁을 하였지만 사역자를 구할 수가 없었다.
나는 눈을 돌려 한국으로 향했다. 분명 이중 언어를 잘 하는 사람이 필요했지만 그 보다 더 절실히 필요한 사람은 어린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이 필요했다.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와 친분이 많은 사관님으로부터 한 청년을 소개 받았다. 구세군 교회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있던 전도사였다.
현재 대학원 졸업반이며 영어도 잘하는 청년이었다. 이력서를 받아보니 너무나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이어다. 마침 그때 한국에 방문할 기회가 있어서 방문 중 그 교회에 가서 예배를 인도한 후 그 전도사를 만나 인터뷰를 하였다. 사람은 신실한 것 같은데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지금 하고 있는 공부를 다 마친 후 사역을 하고 싶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때 우리 눈에 들어온 한 청년이 있었다.
그 사관님의 큰 아들이었다. 전에 앵커리지에 단기선교를 왔던 그 고등학생이었다. 현재 신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만남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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