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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순 <스탁톤 반석 장로교회>


‘면류관 가지고 주 앞에 드리세...’
주일 예배시간에 눈을 감고 찬송을 드렸다. 언뜻 스치는 생각하나가 있었다. ‘오늘 주님 앞에 내가 가져온 면류관은?’  깜짝 놀라며 스스로를 점검하고 있었다.
헌금 봉투 속에 얄팍하게 들어있는 헌금이란 말인가? 아니면 시간이 없다.
소질이 없다 핑계를 하며 멜로디조차 제대로 익히지 못한 체 다른 찬양대원들을 따라 부르는 찬송인가? 속된 마음과 해결되지 않은 문제 가득안고 앉아있는 몸이란 말인가? 
 진정 주님께서 원하시는 예배는 어떤 예배일까? 자신의 생명을 버리시고 나를 구원해 주시고 원하신 예배는 면류관을 받고자 하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주일에 준비한 면류관은 형편이 없는 것이었다.
내 앞에 주어진 한주일은 예배시간마다 들고 갈 면류관을 준비하는 기간이리라.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의식이 있는 그 때부터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주님 기뻐하시지 않는 마음들.
불안, 불신, 근심, 미움, 시기, 경쟁,  이런 것들만 가득 담고 살아온 한 주일을 후회와 아픔으로 주님 앞에 내 놓으면서 회개를 했다.
한두 번 실수를  인식 했다면 고칠 수 있었을 것인데도 약한 나는 늘 같은 곳에서 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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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 하지 못하고 끝없이 손 내밀기만 하는 거머리 같은 욕심은 주님 쓰실 면류관 앞부분에 굵은 가시하나 만들었다.
선한 마음으로 다가서려는 성도에게 경계의 마음을 품고 오해를 하며 밀어냈던 일 또한 옆 부분에 가시였으며 사람사이에서 생기는 사소한 부딪침도 참지 못하여 혼자 삭히지 못하고 그 사건에 스스로의 감정까지 넣어서 다른 사람에게 하소연 했던 것 역시 주님 머리 뒤쪽을 덮는 곳에 달려있는 굵은 가시인 것이다.
나의 이익만을 위하여 스스로 판단하고 주님께 명령하는 기도, 또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하신 처음 말씀이 평안 이였는데 그 평안 누리지 못하고 슬픔과 좌절로만 살아 온 일들은 어느 부분에 어떤 가시를 만들었을까? 주님보다도 자존심을 내세우고, 주님의 영광보다는 자신의 얼굴을 내세웠으며, 기도 보다 일을 더 우선 했을 때 마다 어떤 가시가 올라갔을까?
주어진 일주일 동안 헛된 모든 것을 비우고 주님께서 명령하신 일을 했다면 복사꽃 활짝 피여 있는 면류관 하나 장만 할 수 있었을 텐데.
가시투성이의 면류관을 피 흘리시며 쓰시고도 나에게 인자하신 눈빛과 온유한 얼굴을 향하시는 주님이시기에 차마 볼 수 없어서 두 눈 질끈 감고 감히 다시 부탁 드렸다.
“주님! 다음 주일에는 성령에 열매 아름답게 달린 면류관을 드릴 수 있도록 인도 하여 주소서!”
 모든 것 이길 수 있게 힘주시고 인도 하여 주신다면 조금씩 조금씩 가시가 적어지는 면류관 만들 수 있으리라. 그리하여 훗날 내 생을 모두 들고 주님 앞에 설 때 꽃밭처럼 아름다운 면류관을 들고
 ‘면류관 가시고 주 앞에 드리세 ...’를 자랑스럽게 외칠 수 있기를 소망하였다.
이 마음이 작심 몇 시간이 되지 않기를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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