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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성품이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사랑할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가능한 사랑이라는 말이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10).
그 사랑이 어떤 사랑인가? 자기 독자를 십자가에 매달아 살 찢고 피 흘려 죽게 하실 정도로 큰 대가를 치르시고 우리 인류를, 아니 나를 영원한 지옥에서 건지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 사랑이다.
이 사랑은 지금도, 내일도, 우리 인생이 다하는 날까지 불타오르는 사랑이요, 영원히 취소하지 않는 사랑이다.
바울은 이 사랑을 아는 자이기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8:35),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 하고 자신 있게 고백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사랑을 끊지 않으시기에 주님이 흘리신 피의 효력도 정지하지 않는다.
아무라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그 사랑을 받을 수 있다(롬10:13). 나만 그 사랑을 끊지 않으면 된다.
그러므로 죄와 싸워 이기는 자, 죄를 회개하는 자가 이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는 자요,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자다.
이 사랑의 넓이와 깊이를 경험한 사람만이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이라는 눈물의 찬양을 부를 수 있다.
이 세상 떠날 때도, 숨질 때 내뱉는 최후의 고백이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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