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 있네”         


윤태희 권사  <글로발 메시아 신포니아 부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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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왼편부터 김미숙 총무(사우스베이 여성메시아합창단), 윤태희 권사, 김성남 목사.


벌써 나의 지나온 발자취를 가다듬어야 할 시간이 되었다니.. 주님께서 나에게 허락해주신 수(壽)가 끝나기도 전에 부끄럽지만, 지나온 나의 삶의 이야기를 고백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이유는 내 생에 진주처럼 긴 고통을 감내하며 나를 있게 해 주신 분들의 고귀하고도 값진 신앙적인 유산들이 녹아 있기 때문 입니다.
물론 변변치 않은 글이요 대수롭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글들 속에는 가식 또한 별로 없음도 아울러 말하고 싶습니다.
모두가 진실한 나의 신앙 고백적인 표현이며, 그 때 그 때 격변하는 시대의 아픔 속에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노래였음을 고백하고 싶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제대로 심기어 지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성경의 말씀처럼 나의 뿌리였던 부모님 그리고 할아버지.. 선조들은 이 땅에 떨어진 한 알의 밀이 되었고, 희생 하셔서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었다고 자부 하고 싶습니다.   
사도바울 선생이 노년에 이르러 “내가 선한 싸움 다 싸우고 나의 달려 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라며 지나온 생의 찬가를 부른 것처럼, 분명 나의 뿌리였던 부모님을 비롯하여 선조들은 환란과 핍박 가운데‘믿음을 지키셨던’ 훌륭한 분들이셨습니다. 
그 뿌리는 지나온 시절 나를 지탱케 해준 커다란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 뿌리는 지나온 시절 저에게 한 그루의 청청한 나무가 되게 해 주었습니다.
비바람이 몰아 칠 때면 묵묵히 그 뿌리를 더욱 든든히 하고,
추운 겨울처럼 인생의 찬바람이 불어 올 때면 따뜻한 봄의 소망을 간직한 채로 기다림의 축복을 믿으며 인내 하였습니다.
그래서 뜨거운 여름이 찾아오면 지인(知人)들에게 그늘이 되어 줄 수 있는 여유도 갖게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풍성한 가을이 되면 함께 나누며, 아낌없이 사랑하며,지나온 시절 돌아보며 내게 주셨던 부모님, 할아버지… 그리고 혼자였던 나를 자식처럼 돌봐 주었던 식구들까지 이제 뿌리에 대한 고마움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고 싶습니다.
내 영혼에 찬란한 햇빛처럼 비추어 빛과 길이 되어 주신 분들이 얼굴이 그리워 질 때 마다 생각나는 찬송가가 있습니다. 
“예수 사랑 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있네”
이 찬송가는 어린 시절에 저희 집에서 자주 듣고 불려지던 찬송 입니다.
한국인 최초 감리교인이었던 좌옹 윤치호(尹 致昊) 할아버지를 비롯해 많은 분들이 저희 집 사랑채에 모여 부르던 찬송가였습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찬송가 가사처럼 ‘우리들은 약했습니다.
그러나 권세능력 많으신 예수님을 사랑하는 길이야 말로 우리민족이 나아가야 할 길임을 일깨워 주셨던 그 시대의 선각자 분들이 모여서 자주 부르셨던 찬송 입니다.
시대의 아픔을 고민했던 지도자 들이 모두 저희 집에 모여서 예배 드렸으며, 그 분들은 분명 우리나라를 사랑했고,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던 한 시대의 선구자적인 삶을 살았던 분들 이셨기 때문 입니다. 
무엇보다 그분 들은 저의 사랑하는 가족들 이었습니다.
저는 해평윤씨 도제공파(陶濟公派) 가문에 윤명섭의 무남독녀 윤 태희로 태어났습니다.
제가 늘 자랑스럽게 여기는 저희 가문에 대하여 소개하며 말하고 싶습니다.
윤씨 중에서 파평 (坡平) 윤씨와 해평(海平)윤씨가 있습니다. 해평(海平) 이란? 지명이름입니다. 
현재는 대한민국 경상북도 선산지역을 가리 킵니다. 옛날 조선시대 때 선산은 부(府) 였는데, 선산부에 해평현(海平縣)으로 존속 되었습니다.
지금도 종종 있는 일이지만, 당시에 딸아이를 통하여 집안에 대(代) 를 이어가는 가는 경우가 쉽지 만은 않았고, 많은 반대와 압력이 있었고 심지어 종친 중에서도 “양자”를 두어서라도 가문의 대를 이어가기를 바랬고, 한편으로는 “첩”을 두어서 자식을 더 낳아야 하고 특히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은근한 압력의 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외부 목소리들에 주인공이었던 아버지의 대답은 언제나 한결같이 분명히 안 되는 것이며, “말도 안 되는 외부소리들 ” 이였습니다.  
그 이유는 몇 가지 가 있다고 봅니다.
첫째는 미국 남 감리교출신의 선교사로부터 기독교신앙을 받아들여 한국인 최초의 감리교 신앙인 집안 이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는 아버지의 신앙 양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 입니다. 
둘째는 시대를 앞서서 내다보는 선구자적인 지식으로 미래는 여성도 지도자가 될 수 있으며 장손으로 삼을 수도 있다는 시대적인 열린 안목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들이었습니다. 
셋째는 경제적인 부를 소유 했으면서도 술,과 담배… 노름…등을 하지 않는 선친들의 가풍에서 비롯된 것 임도 인정해야 할 것 입니다.
물론 그것이 초기기독교 문화였지만, 밑바탕에는 들어있는 기독교 정신이라는 그릇에 담겨진 문화가 집안에 스며들어 실천한다고 하는 것은 매우 귀한 행동양심 이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도 당시의 모든 환경과 주변의 사람들의 권유에도 흔들리지 않고 저 하나만을 바라며, 사랑해 주시며, 믿으며 살아오셨던 부모님, 특히 아버님의 훌륭한 모습과 정신은 세월이 한 참 지난, 지금도 따라 갈 수 없는 고귀한 것임에는 틀림 없다고 믿습니다.
제가 이렇게 부족한 저의 삶의 고백을 용기 있게 쓸 수 있음도, 나는 이만큼 할 수 있었음을 과시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겨우 이 정도 밖에 하지 못한다는 부끄러운 고백과 아울러 부모님으로부터 물려 받은 영적 고귀함이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고 믿습니다.   
이따금 혼자 살고 있는 아파트 창문 너머로 보이는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게 됩니다.
저 빛나는 별들이 지금은 이 땅 위에 안 계시지만 지난 시절 나를 언제나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신 분들이었다고 생각하니 … 눈물이 흐릅니다.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사랑합니다.
그 분들은 저 밤하늘의 별처럼 영원히 빛나리라 믿습니다.
나도 이제 그 분들처럼 밤 하늘의 별이 되어 그 분들 곁에 있고 싶습니다.
그것은 나의 사랑하는 며느리,아들,사위, 딸 …손주 들이 이 다음에  또 한번의 세월이 흐른 뒤에 얘기 해 줄 것입니다.  
오늘은 유난히 밤하늘의 별들이 반짝입니다.
내가 흘리는 눈물이 더욱 반짝거리게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여기까지 인도해 주심이 너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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