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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인

<남가주  메시야 합창단원>


친구들과 식사를 하면서 즐거운 수다시간을 가졌다.
이런 저런 얘기하면서 시니어 할인플랜 내용이 나오길래 “맥도널드 커피부터 극장, 식당들의 시니어 할인이 신난다”고 했더니 한 친구가 질색을 했다.
“나이 먹는 게 자랑이냐?”는 것이다.
“어차피 먹는 나이 인데 거기서 감사할 내용을 찾아야지” 했더니 “하긴 그렇다”며 “비행기 요금도 깎아주고 한국가면 지공(지하철 공짜)대접도 괜찮을 것 같아 기대된다”고 했다.
“무엇보다 꼭 해야만 할 의무에서 벗어나 이제는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는 자유가 생겨서 감사한다”고 긍정적인 결론이 맺어졌다.
그러고 보니 고만 고만한 우리들의 대화 주제가 ‘남편과 자식들, 그리고 사회의 부조리, 부정적 주변 비판’에서 이제는 ‘주위의 긍정적 얘기, 봉사나 취미생활, 여행, 연민, 신앙’등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눈을 똑바로 뜨고 입가에 힘을 주어 똑 부러지게 말하기 보다는 편안한 얼굴로 상대방을 바라보고 말을 듣게 된 것 같다.
기를 쓰고 돈 벌던 시기를 지나선지 작은 씀씀이에 만족하고 그에서 절약하는 돈을 누군가를 돕는데 쓸 마음이 커진 듯 하다.
우리들 속에 자신도 모르게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어서서’가 아닐까.
점점 더 ‘ 아, 정말 감사해, 감사할 뿐이지, 은혜야 , 그냥 넘어 가자, 입장 바꿔보니 별거 아니지, 그럴 수 있어,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어?’ 등의 말이 나오니 만남의 끝이 흐뭇해진다.
중년과 노년층에 들어선 여성들이 모인 취미, 선교, 봉사 단체 등이 재정적으로도 깨끗하고 지속적인 활동을 펼쳐나가는 수많은 사례(?)가 그를 입증하는 듯 하다.
치열한 사회 생활을 할 때와 달리 유유상종의 모임이 가능해서일 것이다.
이제는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 하고 싶은 취미나 선교나 봉사활동들을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으니 자연히 싫은 사람들이 많지 않고 마찰도 작다.
악취가 진동하는 곳에는 악한 기운이 몰리게 되고 향기가 나는 곳에는 꽃과 나비가 난무하게 됨을 누구나 경험했을 것이다.
젊어서는 할 수 없이 악취 속에도 들어가고 상종하기 싫은 사람들과도 어울렸어도 사회를 멀지기 관조하는 나이가 되면 색깔이 비슷한 사람들과만 다니는 것을 주변에서 얼마든지 보게 된다.
최근 은혜에 대한 설교를 들으면서 또 다시 내 인생에서 넘쳐나는 감사의 조건들을 발견했다.
뭐가 그리 감사한 것이 많고 뭐가 그리 웃을 일이 많아서 늘 헤프게 웃고 다니냐는 말을 많이 듣는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값없이 받는 은혜에 대해 깊은 묵상이 없었다.
원망도 그만큼 많았다.
억울함에 속이 터질 것 같기도 했다.
가똑똑이라서 사기 당한 케이스도 만만치 않았다.
늦깎이 유학생 남편과 두 아들 사이에서 아슬아슬 하기도 했다. 수십 년간의 회사생활도 겉보기만큼 쉽진 않았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도 만났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모든 것이 은혜여서 감사하지 않을 조건이 단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속도 터지지 않았고 아팠어도 잘 쾌유되었고 사기 당해도 홈 리스가 되진 않았고 가정도 원만하게 서 있다.
회사생활을 통해 수많은 훌륭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 행복했다.
돈이 없어도 돈 없어서 힘들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소욕자족의 마음도 값없이 받은 은혜여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지금부터라도 은혜는 물이 아니라 돌에 새겨 감사하고 원수는 돌이 아니라 물에 새겨 흘러가버리게 더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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