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란트 셰어링하는 원우현·이방숙 부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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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 후 달란트 기부를 통해 작은교회를 돕고 있는 원우현 이방숙 교수.


“셰어링은 내 것을 먼저 포기할 때 가능합니다. 그래야 상대가 원할 때,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만큼 나눌 수 있습니다.”
원우현(70) 이방숙(69) 두 명예교수가 밝힌 셰어링에 관한 평소 생각이다.
‘내 것을 포기하라.’ 그러나 꽉 움켜쥔 나의 것, 우리 교회 것을 포기하고 나눔의 삶을 산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원 교수는 베드로전서 말씀으로 답을 대신했다. “갓난아기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
철부지 어린이나 소외받는 이들이 구원의 대상, 즉 하나님이 보내준 선물임을 깨닫는 순간 내어놓게 된다는 거다. 전도의 사명만 있다면 못할 게 없다. 그래서 부부 역시 자신의 것을 버렸다.
고려대 언론대학원장을 지낸 원 교수는 2007년 정년퇴임했다. 그는 한국 언론학계의 태두다. 한국언론학회장, 한국언론법학회장 등을 역임한 학계의 권위자이며 방통위 부원장을 맡는 등 실무에 있어서도 전문가다.
부인 이 교수는 연세대 음악대학장을 지내고 2009년 퇴임한 유명 피아니스트다.
특히 그의 부친 이인범 교수는 현제명 작곡의 ‘희망의 노래’로 널리 알려진 한국을 대표하는 1세대 리릭테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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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겨울 철우한빛아카데미에서 음악 교육을 받는 학생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이 교수는 지난해 연세대에 1억원의 장학금을 기탁, 주변을 놀라게 했다.
존경받는 선생님이요, 사회적으로 명망 높은 교수 부부지만 은퇴 후 이들은 교수 명함도, 한 대형교회 장로·권사라는 타이틀을 버린 채 이름도 빛도 없이 살고 있다.
“하나님 일을 하는데 은퇴가 어디 있나요. 백발이 된 저 자신을 돌아보고 영광의 면류관을 얻는 그 날까지 의로운 길로 힘써 가야지요. 그게 나눔의 삶입니다.”
부부는 서울 온누리교회 장로, 권사다. 원 교수는 교회에서 정기적으로 하나원을 방문해 예배드리고 전도하는 탈북민 지원사역을 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 사역도 감당했다. 이 교수는 권사회 반주자로 헌신 중이다.
제자에게 피아노 반주를 맡길 법도 한데 권사회 봉사만큼은 이 교수가 직접 챙긴다.
하지만 부부에게 주 사역은 따로 있다. 시골의 한 작은 교회를 섬기는 것. 3년째 접어들었다.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 주북리에 위치한 철우한빛교회는 전형적인 시골 마을에 세워진 가족 공동체 같은 곳이다. 2009년 11월 원순석 목사는 먼 친척뻘인 원 교수에게 교회 개척 의지를 밝혔다.
“마흔도 안 된 젊은 분이 음악목사가 되어 자기표현을 세상에 못하고 사는 주민들을 섬기겠다고 했습니다.
그 열정에 큰 감동을 받고 뭐 도울 일이 없을까를 생각했지요.”
교수 부부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그래서 교회 내에 철우한빛아카데미를 설립하고 원 교수가 이사장을 맡았다.
“말 그대로 달란트 셰어링입니다. 저는 인근 노인과 외국인 근로자, 청소년을 대상으로 영어성경을 가르칩니다.
목사님은 기타 드럼 노래를, 아내는 피아노를 지도하며 복음을 전합니다. 중·고교 학생들이 배우는 데 참 재밌어 합니다. 사실 아내는 피아니스트로 꽤 유명한데, 여기 분들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저 ‘피아노 잘 치는 권사님’이지요(웃음).”
철우한빛교회는 이 같은 달란트 나눔을 통해 현재 30여명의 성도들이 매 주일 출석해 예배드린다.
원 교수는 “작은 교회에서 사역해보니 한 영혼, 한 영혼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됐다”며 “달란트라는 씨앗을 뿌려 열매를 맺고 그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거둬들이는 농부의 마음을 느껴보라”고 조언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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