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샘물교회 단기선교 중 순교한 故배형규 목사 아버지 배호중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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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호중 장로.


 2007년 7월25일. 배호중(77·제주영락교회 은퇴) 장로는 아들의 사망 소식을 전화로 통보받았다.
당시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났던 분당샘물교회 단기봉사단원을 통솔하던 아들 배형규 목사는 무장 세력 탈레반에 의해 순교했다.
그때 배 장로는 아들 몸에 난 7군데의 총구를 보면서 ‘하나님의 뜻은 과연 어디 있을까’를 묵상하고 있다고 했다.
순교 5주기를 이틀 앞둔 23일, 제주도에 살고 있는 배 장로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배 장로가 언론 에 입을 연 건 5년 만에 처음이다.
신분을 밝히자 배 장로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밝은 목소리였다.
“시간이 정말 쏜살같이 지나갔어요, 정말. 처음 1~2년은 하나님이 우리 ‘형규 목사’를 왜 그리 빨리 데려가셨나, 일을 더 할 나이인데….‘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자주 들었어요. 그래서 조금은 힘들었죠.” 배 장로는 아들을 부를 때 꼭 ’형규 목사‘라고 칭했다.
그의 마음에 변화를 이끈 건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대화였다. “모든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할 수 있는 거라곤 기도 밖에 없었어요.”
그는 기도하면서, 또 틈틈이 배 목사가 남긴 일기와 글들을 읽으면서 아들에 대해 미처 몰랐던 부분을 새롭게 알게 됐다.
이를테면 배 목사의 군복무 시절, 잘 낫지 않는 피부병으로 고생하는 와중에서도 일기장에 적어놓은 기도 제목 ①번이 ’형의 신앙을 위해’였고, ②번이 자신의 피부병을 고쳐달라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배 목사의 통지표에 ‘늘 어려운 사람을 돕고 화해를 잘 시킨다’고 적혀 있던 담임 교사의 코멘트도 다시 눈여겨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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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호중 장로 가족사진.


“형규 목사가 어릴 때부터 다른 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읽혔어요. 아비가 평생 지닌 신앙심보다 훨씬 깊었던 거지요. 그러면서도 늘 나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신앙의 유산을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라고 끝을 맺었어요.”
지난해 2월이었다. 집을 떠나 경기도 수원에 잠시 머물던 배 장로는 이전엔 느끼지 못했던 신앙적 체험을 했다고 고백했다.
 “성령의 임재를 체험했어요. ‘하나님, 저는 다른 사람들 보기에는 장로도 하고 믿음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닙니다.
가식이 많고 위선적인 죄인입니다. 우리 형규 목사처럼 저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갖기 원합니다’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꼭 안아주셨습니다.”
30년 넘게 성경과 기도를 가까이해 온 장로로, 교회 직분자로 지내오면서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때 그 경험이 자신의 생각과 기도의 폭을 넓혀줬다고 했다.
“나와 가족을 위한 기도에서 이웃과 한국교회, 세계교회, 순교자들의 가족과 선교사들로까지 넓어지더라고요. 순교의 피가 떨어진 아프가니스탄의 평화와 복음전파를 위한 소망도 품고 있습니다.”
새벽 4시20분부터 시작되는 배 장로의 일과는 교회에서의 새벽기도와 집에서의 성경묵상, 인터넷 성경필사로 이어진다.
또 복지관 기타교실에서 기타를, 시청 정보화센터에서는 컴퓨터를 재미있게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활기를 찾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가 묵상했던 ‘하나님의 뜻’도 찾았는지 궁금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에요.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분임을 깨달았어요.” 5년 만에 찾은 해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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