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필사를 완주한 구리 성광교회 성도들이 31일 교회 새가족실에서 손수 써 내려 간 필사본을 펼쳐 보이며 미소 짓고 있다. 성광교회 제공


코로나19 팬데믹이 한국교회에 던진 가장 큰 충격은 ‘멈춤’이었다. 감염 확산 방지를 목표로 강력한 거리두기가 시행되면서 대면 중심의 예배와 각종 집회, 모임이 멈췄다. 멈춤이 지속되는 동안 온라인으로 옮겨진 성도들의 신앙생활에선 그간 눈에 띄지 않던 영적 구멍이 드러났다. 하지만 31일 경기도 구리 성광교회(김희수 목사)에서 만난 성도들의 이야기 속엔 그 구멍을 메우고도 남을 감격과 은혜가 엿보였다.

“처음 성경 필사 얘길 들었을 때 제가 완필할 수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요. 군대에서 불침번 서면서 통독에 도전하고, 생활관에서 필사를 도전했을 때도 중간에 멈추고 말았거든요. 그런데 이번엔 달랐습니다.”(이창재씨·26)

“팔순 넘도록 장로로 신앙생활 해오면서도 필사를 완수해보긴 처음이었습니다. 지난 2년여간 아내와 함께 나란히 3번씩을 완필했어요. 이런 감동을 느끼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임용빈 장로·81)
 


이 교회에선 코로나 팬데믹으로 사회 전반이 극심한 위축을 겪었던 2020년 9월부터 성도들이 손으로 성경을 쓰기 시작했다. 김희수(67·사진) 목사는 “대면 교제가 중단되고 온라인으로만 예배드리게 되면서 ‘성도들이 일상 속에서 하나님과 가까이 교제 나눌 방법이 뭘까’ 고민하던 중 필사를 떠올리게 됐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성경 필사 대행진’이란 이름으로 1300여명이 장정에 나섰다. 짧은 기간 집중하는 것으로 마무리될 리 없는 도전 앞에 갖가지 난관들이 길목을 막았다. 유학 중인 딸을 뒷바라지하는 엄마이자 병환 중에 있던 아버지를 모시던 딸, 선거를 앞둔 정치인의 아내로 분주하게 살던 박주영(55) 권사에게 성경 쓰기는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하지만 그는 위기에 봉착할수록 필사적으로 펜을 붙들었다.

“3개월여간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로 이어지는 딸의 연주회에 동행할 땐 항공기 수하물 추가 요금을 내면서도 성경 필사 준비물은 챙겼어요. 숙소에서도, 딸이 리허설 할 때도 저는 성경을 쓰고 있었지요. 연주회 일정 중 아버지께서 별세하셨을 땐 사방으로 노력해도 급히 귀국할 수 없어 ‘임종도 못 본 딸’이란 죄책감이 말도 못 했어요. 성경을 쓰며 기도하는 동안 기적처럼 하늘길이 열려 발인예배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성도들이 완필한 성경 필사본. 성광교회 제공


지난 2000년 처음 성경 필사에 도전했던 이정용(64) 집사는 지금까지 한글(2회)과 영어(1회) 성경을 모두 완필했다. 이 집사는 “사업 부도, 아버님 별세 등 삶의 굴곡진 순간마다 낙망할 수 있었지만, 말씀을 붙들었을 때 거뜬히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성경 필사본을 딸과 손녀에게 유산으로 남겨주며 말씀과 함께하는 삶의 소중함을 알려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눈과 입, 손으로 성경을 묵상하는 동안 기도의 열매를 거두고 회복을 경험한 이들도 수두룩하다. 임 장로는 매일 새벽기도 후, 점심과 저녁 식사 후, 잠들기 전마다 필사를 하다 기도제목이었던 손녀딸의 공무원 합격 소식을 들었고, 이씨는 학교 졸업 후 영상 콘텐츠 시청에 매몰돼 있던 습관을 성경 필사로 바꿔가며 스스로 집중한 끝에 지난 3월 의학공학연구소에 취업할 수 있었다. 지난달 1일 취임한 주광덕 남양주시장의 아내인 박 권사는 “나를 통해 신앙의 물꼬를 튼 남편이 지금은 나보다 큐티(QT·말씀묵상)에 더 집중한다”며 “가족 모두가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시간”이라고 전했다.

교역자부터 일반 성도까지 필사를 완주한 이들은 300여명. 김 목사는 “창립 50주년을 맞은 해에 교회가 말씀으로 무장한 기드온 300용사를 얻은 셈”이라며 “교회 로비에 필사본 전시회를 마련해 성도들이 신앙의 본질인 말씀과 기도를 가슴에 새길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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