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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명숙(앞줄 맨 오른쪽) 여명학교 교장을 비롯한 선생님과 학생들이 12일 서울 중구 여명학교 옥상에서 하트 모양 포즈를 취하며 서로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2016년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들어온 아윤(가명·20)씨는 연기자를 꿈꾸는 학생이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한국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고, 한국문화에 익숙하지도 못해 연기자는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아윤씨를 잡아준 곳이 여명학교였다. 

12일 서울 중구 여명학교에서 만난 아윤씨는 "이곳에서 한국사회에 적응할 시간을 가졌고 연기의 꿈을 다시 꾸게 됐다. 외로운 한국에서 유일하게 날 환대해준 이가 학교 선생님"이라며 웃었다.

2004년 설립된 여명학교는 아윤씨 같은 탈북 학생이나 탈북 여성이 중국에서 낳은 68명 아이의 안식처가 되어주는 곳이다. 

13년째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황희건 교감은 "아르바이트 삼아 처음 학교에 왔던 날이 생생하다. 나를 보고 해맑게 웃던 아이들이 밤에 잠을 자면서 탈북할 때의 악몽을 꾸는 것을 보고 그 웃음 뒤에 생사를 넘나든 아픔이 있는 걸 알게 됐다"며 "이 아이들을 최선을 다해 사랑해 줘야겠다는 생각에 지금까지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선생님들의 애틋한 마음을 아는지 학교에서 만난 여명학교 학생들은 명랑하고 활기찼다. 지현(가명·18)양은 "중국 학교에서는 숙제를 안 해 왔다고 뺨을 맞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내가 잘하는 분야에 집중하도록 해줘서 학교생활이 즐겁다"고 말했다. 

인정(가명·22)씨는 "선생님께서 진로는 물론이고 가족 관계에서 생기는 갈등도 함께 고민해 주셨다. 한국생활에 힘들어하는 엄마와 다툴 때마다 위로하고 관계를 회복하도록 도와 주신다"고 감사를 표했다.

선생님에게 받은 사랑을 보답하기 위해 학교에서 봉사하는 졸업생도 있다. 

지난 3월부터 인턴 교사가 된 졸업생 정지은(서울여대 휴학)씨는 여명학교에 다니던 시절을 회상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 중국에서 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한국말을 하나도 몰랐어요. 선생님이 온갖 보디랭귀지를 동원해 저를 가르쳐 주셨죠. 그때의 저처럼 한국어에 서툰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인턴 교사로 지원했습니다."

선생님들은 한국에서 받은 사랑을 다시 베풀려고 노력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기특하다. 

황 교감은 "얼마 전 대학에 입학한 졸업생에게 연락이 왔다. 본인이 받은 혜택을 꼭 남한의 어려운 이들을 돕는 일로 갚겠다고 하는 모습이 참 예뻤다"며 "아이들이 모두 자신을 보듬어준 나라에 보탬이 되려고 한다"며 대견해했다.

여명학교에는 오랜 기간 해결하지 못한 고민거리가 있다. 

내년 8월이면 건물 임대 계약이 끝나는데 아직 갈 곳을 구하지 못했다. 

몇 년 전 서울 은평구로 이전하려고 했으나 주민들 반대에 부딪혀 계획을 접었다. 

극소수의 문제 아동을 보고 학교에 선입견을 품는 경우가 많았다.

조명숙 교장은 "여명학교는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정체성 혼란으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웃게 하고 싶어 설립한 곳이다. 학교가 없으면 탈선하거나 엇나가는 아이들이 더 많이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아이들에게는 '땅'이 아니라 따뜻한 '품'이 필요하다. 이들을 한국에 기여할 수 있는 어엿한 인간으로 키워내기 위해 정부 민간 그리고 교회가 한마음을 모아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국민일보 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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