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경력을 뒤로하고 선교지로 떠난 섬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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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세의 신성종 목사는 무척 편안해 보였다. 그는 환상 가운데 천국과 지옥을 보았다고 했다. 그 경험을 통해 선교지로 떠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남은 생 동안 오직 그분이 기뻐하는 일을 하겠다는 다짐을 하며.

 

 

이제는 잊혀진 인물 같지만 1990년대에 신성종(75) 목사는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목회자였다. 그는 93년 문민정부 출범시 ‘장로 대통령’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 출석하던 충현교회의 담임이었다.
당시 YS는 대통령 당선이후 처음 몇 주일은 충현교회 예배에 참석했다.
이후 경호 문제로 청와대에서 주일 예배를 드렸다. 물론 신 목사가 청와대 예배를 인도했다.
당시 신 목사에 대한 이야기는 교계뿐 아니라 일반 언론에서도 다뤘다.
이후 충현교회를 떠난 그는 미국 LA의 대표적 교회의 하나인 미주성산교회 담임으로 사역하다 10년 전 65세에 은퇴했다.
곧바로 한국에 돌아와 대전에 월평동산교회를 개척했고 이후 70세에 사역을 내려놓았다.
목회자로서 뿐 아니라 학문적으로도 신 목사의 경력은 화려하다.
연세대 신학과와 총신대를 졸업한 그는 미국 웨스트민스터대에서 신학석사를, 명문 템플대에서 문학석사 및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명지대와 아세아연합신학대에서 가르쳤으며 총신대 대학원장도 역임했다.
교리서 및 수필집, 시집 등 70여권의 책을 낸 왕성한 저자이기도 하다. 초창기 본보의 주요 필자였다. 그런 그도 세월과 함께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져갔다.
갑자기 2년 여 전부터 신 목사에 대한 이야기가 한국교계에 돌기 시작했다. 몇 목회자로부터 “신성종 목사님이 입신(入神)했다고 하던데…. 소식 들었어요?”라는 물음을 받았다.
입신. 신의 경지에 들어갔다는 용어다. 그러고 보니 그는 2009년 초 ‘신성종의 내가 본 지옥과 천국’(크리스챤서적)이란 책을 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예장 합동 측 목회자이자 신학자인 신 목사가 입신했다니, 지옥과 천국을 보았다니…. 흥미로웠다.
몇 번의 수소문 끝에 지난 28일 경기도 일산 벧엘교회 커피숍에서 신 목사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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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선교사로 아내 이건숙 사모와 캄보디아, 인도 등지에서 사역하다 일주일 전에 돌아왔다고 했다.
아메리카노 커피가 나오자 대번 “원두 12온스를 넣은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아니, 어떻게 아세요?” “얼마 전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습니다.” “아니, 도대체 왜 바리스타 자격증을….” 그의 대답이 뜻밖이었다. “섬기기 위해서요. 벌써 4000여잔의 커피를 만들어 이웃에게 대접했습니다.”
분명 무언가 신 목사는 달라져 있었다. “캄보디아와 인도에서 힘드셨겠네요. 연세도 있으신데….”“말도 못해요. 변변한 화장실도 없고, 바퀴벌레가 도처에서 기어다녀요. 정말 열악한 지역이었어요.” 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왜 굳이 그런 지역에 가셨나요?” 그는 확신있게 답했다. “천국과 지옥을 보고 무엇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에요.”
그는 입신이나, ‘천국과 지옥을 갔다 왔다’는 표현은 싫어한다고 말했다. 신학적으로도 거부한다고 덧붙였다.
대신 천국과 지옥을 ‘보았다’고 했다. 2008년 초에 그의 장모가 “여보게, 천국은 정말 있는 건가? 내가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어?”라고 물었다.
신학적·성경적으로는 알고, 가르쳤는데 마음의 확신이 없었다. 정확하게 대답해 드릴 수 없었다.
그래서 그해 매일 한 끼씩 금식하면서 간절히 “하나님, 제게 천국을 보여주세요”라고 기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환상을 보았다.
천국과 지옥이 실재하며 그곳에 누가 있는지를 보았다. 환상은 8일간 지속되었다.
충격적인 내용이 너무 많았다. 자신은 간신히 구원 받아 천국에 들어갔지만 상급은 거의 없었다. 목회하면서 수많은 ‘하나님의 일’을 했다고 자부한 그였다.
놀란 그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모두 네 영광을 위해서 한 것이다. 나를 위해 한 것이 아니다.” 그 말이 환상 속에서도 그의 가슴을 쳤다.
천국을 살펴보니 맨 앞자리에 순교자들이 보였다. 책 속에는 천국에서 만난 순교자들의 실명도 거론되어 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선교사와 복음전도자들이 자리했다. 그때, 깨달았다. ‘아, 하나님이 인정하고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하는구나. 그것이 사는 길이구나.’ 이것이 ‘화려한 경력의 목사’ 신성종이 70대 노구를 이끌고 선교지를 다니며 섬김의 삶을 살고 있는 이유였다.
소설가인 아내는 “지금 경험한 내용이 참 귀한데 모두 기록해 두세요”라고 권했다.
그 기록한 것을 장모에게 보여줬다. 신 목사에 따르면 장모는 그 내용을 보고 천국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다며 기뻐했다.
책을 내자는 제안이 왔다. 고민했다. 자신이 속한 교단에서 이단으로 몰릴 가능성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 같은 경험을 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분명 있는 것 같았다. 책을 내자 두 가지 반응이 왔다.
‘신학자가 뭐 그런 내용을 썼는가’라는 비난과 ‘다른 이도 아닌 신성종 목사가 그런 이야기 하는 데에는 충분히 이유가 있겠지’라는 이해가 교차됐다.
얼마 전 미국 랍 벨 목사의 ‘사랑이 이긴다’(Love wins)로 인해 ‘천국과 지옥 논란’이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신 목사는 “자기가 보지 못했다고 천국과 지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만일 지옥과 천국이 없다면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사기꾼이 되는 것이다”고 했다.
또 물었다. “천국과 지옥을 다녀오면 성품도 변화됩니까?” 그의 대답이다. “본래 지니고 있던 제일성품은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나는 급한 성격인데 천국을 보았어도 그 성격은 그대로입니다.
대신 삶의 태도가 달라집디다. 본 사람과 보지 못한 사람의 차이지요.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보게 되니 그 방향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어요.”
“개인의 경험을 책으로 내는데 대한 위험성은 없나요? 더구나 신 목사님은 책임 있는 ‘교계 어른’이신데요.” “물론 위험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유익도 많습니다.
특히 전도에 도움이 됩니다.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확신할 때, 어떻게 생명의 구주 되신 예수님을 믿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신 목사 말대로 그의 개인적 경험의 일반화는 위험하기도, 유익하기도 했다. 인간 이성으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부분도 많다.
그러나 신앙은 이성을 초월하는 것이 아닌가. 분명한 것은 신 목사가 경험한 무언가는 그의 삶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가져왔다는 점이다.
다시 한번 물었다. “천국과 지옥을 정말 보았습니까?” 신 목사는 내 눈을 잠시 응시하더니 나직이 말했다. “보았으니 떠났지요. 보지 못했으면 결코 선교지에 갈 위인이 못됩니다. 저라는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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